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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서 간 파독’ 언제인데···중노동·저임금에 다시 떠나는 간호사들

전·현직 간호사 “높은 업무 강도 대비 낮은 임금” 성토 美 간호계 업무 난도 절반·임금은 한국 대비 4배 수준 의료 현장 “간호사 인력 유출로 인한 업무 공백 우려” 간협 “신입 배출 확대 아닌 기본적 처우 개선 우선시”

2023-06-20     이승준 기자
간호사들 사이에서 조기퇴사·해외취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노동·저임금’의 업무환경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픽사베이]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기존 업무량도 많은데 신규 간호사들은 물품 체크 등 할 일이 더 많았다. 무급 연장근무가 매일같이 이어졌다.”(경력 1년 차 전직 간호사)

“매년 우리 병원은 퇴사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수백 명의 신규간호사를 채용한다. 신규 간호사뿐 아니라 중견 간호사들의 사직률도 매우 높다.”(경력 9년 차 현직 간호사)

간호법 사태로 간호사들의 근무여건이 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전·현직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와 불합리한 환경에 대한 병원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동시에 근무여건 중 업무 강도 대비 저임금의 문제점도 다발적으로 지적된다.  

간호사로 취업한 지 1개월 만에 퇴직한 A씨는 “트레이닝 없이 업무 강도가 가장 센 암센터에 투입됐다”라며 “그 와중에 우리 병원 고연차 간호사들은 신입들에게 무관심해 일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라고 퇴직 사유를 밝혔다. 또 “신규 간호사에게도 고강도 업무를 요구하지만 그에 비해 급여는 턱없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3개월 만에 간호사를 그만둔 B씨는 “업무량에 비하면 급여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며 “그 와중에 3교대를 한다면 내 몸을 갈아 돈을 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답했다. 이어 “대학교에서 간호학과의 취업률로 홍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일해 보니 퇴사자가 많아 취업이 잘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는 7년 8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15년 2개월인 일반 직장인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대한간호협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에는 신규 간호사 중 절반 이상이 사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사직률은 △2014년 28.7% △2016년 35.3% △2018년 42.7% △2020년 47.4% △2021년 52.1%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띠었다. 사직 이유는 업무 부적응이 32.6%로 가장 높았다. 

이러한 업무 강도의 문제는 신규 간호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5년 차라 밝힌 현직 간호사 C씨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끼여 양쪽에 치이는 느낌”이라며 “예민한 분위기 속에 바쁜 업무로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해서 방광염에 걸리는 동료 간호사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또 9년째 간호사로 근무 중인 D씨는 “중견 간호사가 퇴사하면 그 자리는 신규 간호사로 채워진다”라며 “그러면 신규 간호사에게 고강도 업무가 요구될 수밖에 없고 신규 간호사들은 버티지 못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답은 업무환경 개선뿐인데 병원은 신규 간호사 대량채용만 반복할 뿐”이라며 “연차를 가리지 않고 고강도 업무가 요구되는 현실에 그만두는 간호사들은 경력 구분 없이 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실정 속에 한국을 떠나는 간호사들도 속출하고 있다. ‘파독(派獨) 간호사’ 시절도 아닌데 다른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 하는 데 따른 자조 섞인 탄식이 넘쳐난다. 

미국 간호사국가시험원(NCSBN)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NCLEX에 응시한 한국인 수는 1816명에 달했다. 이는 2018년 783명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는 3월까지의 응시자 수만 해도 1758명에 달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최대치 경신이 예상된다. 

간호사들이 해외로 떠나는 데는 국내의 임금·처우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재직 중인 E씨는 “미국의 업무 강도는 한국의 경우에 비해 절반 수준인데 연봉은 4배쯤 된다. 마치 과거 돈이 없어서 독일로 일을 하러 간 간호사들이 생각날 정도로 한국과 미국의 실정은 천지 차이에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조사에 따르면 현직 간호사의 42.5%가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해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의 간호사는 주 60시간 근무를 넘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3개월 동안 이직을 고려한 간호사는 74.1%나 됐다.

고강도 업무 대비 임금은 적다는 데 간호사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간협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 평균 연봉은 4675만원으로 9000만원~1억원의 미국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또 한국은 3교대 근무가 대부분인 반면 미국 간호사들은 3일간 2교대 근무 후 4일 휴식하는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현직 간호사 F씨는 “임금 수준이 업무 강도를 따라오지 못 한다”라며 “특히 신입은 똑같이 일하면서 150~18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위 탑5 병원에서 높은 임금을 받더라도 고강도 업무와 태움 등 업무환경에 지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펜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간호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며 미국·캐나다·영국·호주 등 선진국에 취업할 기회가 늘어난 것도 간호 인력 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해외취업 등으로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늘자 의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소재 한 중소병원은 간호사 인력난으로 2년 전 중환자실을 폐쇄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추가 간호사 채용이 어려워 여전히 중환자실 운영을 못 하고 있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간호계는 인력 유출과 그로 인한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서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호사 단체 관계자는 “간호사 배치 수준은 환자 사망률 및 패혈증, 재입원, 재원기간, 중환자실 입원, 병원 감염, 낙상, 욕창 등 환자 건강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며 “만성적 간호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규 배출 인력을 늘릴 게 아니라 간호사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고 간호법으로 근무환경 개선과 배치기준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