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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이 기회?···간호계 “우린 또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정부·여당, ‘PA 간호사’ 제도화 시동···간호법 ‘재발의’ 의료 현장 “핵심조항 빠져···선거용 득표 이벤트 불과” 야당도 ‘의도’ 지적···“총선 앞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 “퇴사·해외이탈 속출···선거 끝났지만 관심 가져주길”

2024-04-16     이승준 기자
정치권에서 간호법이 재점화됐지만 정작 간호계에서는 이미 늦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의정 갈등으로 간호사가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투입되면서 ‘PA 간호사’의 제도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정치권에서는 진료보조(PA) 간호사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작 간호계에서는 이것이 의사 압박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동시에 간호사들이 지난 총선 전 ‘표몰이’ 수단으로 쓰였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새로운 간호사법을 마련하고 이를 발의하기 위한 검토의견 수렴에 나섰다. 법안은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 관련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 법률을 제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간호에 대한 법 보호 체계 및 간호인력 수급·교육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규율하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법안 발의의 배경으로는 의정 갈등 속 간호사들의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간호사가 투입되자 ‘PA 간호사’ 제도화가 거론됐다. 실제로 ‘의사의 포괄적 지도나 위임하에 진료 지원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조항은 PA 간호사의 합법화 일환으로 해당 법안이 주목 받은 이유가 됐다. 

대통령도 PA 간호사의 제도화에 힘을 보탰다. 앞서 대통령실은 PA 간호사 법제화를 위해 관련 법을 정비하면서 간호법 제정안 재추진 가능성도 열어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PA 간호사와 관련해 현행 의료 체계에서 어떤 방향으로 제도화할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겠다”면서 PA 간호사 제도화에 긍정 신호를 보냈다.

간호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소식을 접한 후 성명을 내고 “발의된 간호사 법안은 간호가 필요한 모든 국민과 65만 간호인에게 따뜻한 봄날 같은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그동안 관련 법이 없어 환자들과 간호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고 환자들을 위한다는 것이 불법이 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맞기도 했다”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정작 의료 현장 간호사들이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간호사들은 이 법안에 핵심이 빠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간호법안에는 지난해 간호법안에 포함돼 있었던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문구가 빠졌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 단체들은 이것을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료·돌봄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라 반발했었다. 

이러자 결국 총선용 표몰이 수단으로 자신들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간호사 A씨는 “‘지역사회’ 문구가 빠졌다는 사실은 간호법에서 ‘골수를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간호법을 요구하는 이유가 지역사회 간호체계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발의 시기를 고려한다면 이는 결국 간호사가 다시 한번 정치권에 이용당한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쪽에서도 법안 발의 의도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정부가 간호법을 거부한 이유는 다른 직역의 업무 범위 침해로 인한 혼란과 개설권을 둘러싼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데 있었는데 여당이 이번 에 자신들이 반대했던 조항들을 포함한 채 발의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의 결정을 부정한 이율배반적 행태라는 것이다.

야당은 총선과 결부해 공세를 펼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을 반대했던 여당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고 스스로 입법안을 발의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정부·여당 법안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발의됐을 뿐만 아니라 직역 간의 업무 충돌을 야기할 우려가 큰 포괄 위임 규정과 간호사의 단독 개설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총선 후 거세진 의사들의 대정부 공세로 인해 실질적인 제도화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들은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데 PA 간호사가 투입되는 양상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당시 “PA 간호사 업무 영역 확대는 의미 없는 얘기”라며 “의료 현장에선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나자 간호법 논의가 재점화됐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미국 간호사자격시험 주관기관 NCSBN의 통계에서는 미국 간호사 시험에 응시한 한국인 수가 2022년 1816명에서 2023년 3299명으로 81.7%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간호사들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양상에 간호계 관계자는 “이미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의정 갈등 전부터 열악한 근무환경과 모호한 업무범위에 못 이겨 퇴사자와 해외이탈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이제 총선도 끝난 만큼 간호사들을 단순히 ‘시의적절한 표몰이용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가 왜 PA 간호사의 합법화를 요구하는지 정부가 진정성 있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