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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여야 ‘간호법’ 미는데···기대 잃은 간호사들 ‘해외 엑시트’ 시작됐다

여야 잇달아 당론 채택···PA 간호사 제도화 공감 의약계 거센 반대···“직능 갈등 유발 무면허 행위” 의사 업무 대리 여전···전공의 이탈로 취업 ‘요원’ 빅5 내년 채용 미지수···美 시험 응시 80% 폭증

2024-07-15     이승준 기자
22대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의약계 반발로 제도화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간호사들 사이에서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한간호협회, 그래픽=이승준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22대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고 있지만 간호사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불법업무에 내몰린 가운데 계속되는 의약계의 간호법 저지 시도와 의정갈등 장기화로 좁아진 취업문이 겹치면서 좌절감에 빠진 간호사들이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과 간호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여야는 잇달아 간호법 제정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근 간호법을 당론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 판단·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치과·한의사 지도 아래 시행하는 진료 보조 △건강증진 활동의 기획과 수행 △간호조무사 업무 보조 지도로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간호사 출신 이수진 의원을 중심으로 간호법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 의원의 간호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와 1인당 환자 수 축소를 위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시행의 원칙과 국가 책무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선우 의원도 간호법을 발의한 바 있다.

여야 모두 이번 국회에서 간호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21대 국회 당시 홀대 받던 간호법이 핵심 의제로 급부상했다. 간호법을 당론 법안으로 채택한 이유는 최근 의정갈등으로 발생한 의사들의 공백을 채울 의료체계가 부제하다는 점과 암묵적으로 의사의 빈자리를 대신해온 PA 간호사를 제도권에 진입시키자는 의견에 여야 모두 공감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의약계의 반대가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을 ‘특혜법’으로 규정하며 정치권을 향해 철회를 요구했다. 의협은 “간호사·간호조무사와 함께 간호인력을 포괄하는 것은 요양보호사 등 관련 직역의 업무를 침해한다”며 “간호사·전문간호사에게 의사의 지도·이임 아래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도 간호와 간호사 업무를 명확히 하기 위한 법률은 수긍한다면서도 타 직능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업무를 포함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약사회는 “간호법 발의 목적은 수긍하지만 보건의료인은 각자의 면허체계 안에 독자적 업무범위가 있다”면서 “직능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조문이 들어가는 것은 입법 필요성·과정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봤다.

의료현장에서는 여전히 의사들의 업무가 불법적으로 떠넘겨지며 간호사들의 좌절감을 키우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전국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현장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의료기관 93곳 중 58곳에서 의사의 ID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간호사 등이 처방전을 대리발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의 62.3%에 달하는 수치다.

이러자 간호사들은 낙담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 A씨는 “그동안 수차례 간호법 제정의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패턴은 똑같았다”면서 “간호계가 발의 소식에 환영하면 의료계가 나서 반대하고, 그러다 보면 제도화는 갈수록 멀어져 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야가 동시에 당론으로 내건 것은 희망적이지만 큰 기대가 없는 것도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내 의료현장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간호사자격시험 주관기관 NCSBN 통계에서는 미국 간호사 시험에 응시한 한국인 수가 2022년 1816명에서 2023년 3299명으로 8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가 최초 응시자 대상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수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별 순위도 2021년 5위에서 2022년부터는 3위로 올랐다.

최근 국내 취업문이 높아진 점도 해외이탈 가속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상급종합병원 중 상반기 신규 간호사 채용을 진행 중인 곳은 중앙대병원뿐이다. 보건복지부는 예비 간호사들이 여러 병원에 중복 채용돼 병원에 인력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기간 면접제’를 실시하겠다고 지난 1월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공의 이탈로 병원 사정이 악화되며 무산됐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사정은 더 암담하다. 이들은 거의 매년 세자릿수 규모로 신규 간호사를 채용해 왔지만 내년 채용 공고 자체가 미지수다. 빅5 관계자는 “내년 신규 간호사 채용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병원 사정이 어려워 언제 공고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충원도 미진한 점을 이탈 원인으로 지목한다. 상급종합병원 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B씨는 “그동안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해 방광염이 걸려가면서까지 현장에서 뛰어다녀야 했는데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업무강도가 더욱 높아졌다”며 “그 와중에 신규 채용도 안 되니 상황이 악화될 일만 남아 해외 취업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무환경 개선과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최근 간호사를 그만뒀다고 밝힌 C씨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게 된 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이었다”면서 “해외로 떠나거나 아예 간호사 자체를 그만두는 인력을 줄이려면 근무환경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중심에는 바로 간호법의 제정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