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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연차마저 ‘강제 소진’ 간호사들···간호법에도 보호장치 없다

비자발적 연차 사용 종용···해외 금지하는 고강도 근무 ‘1인당 환자수’ 원인 지목···“미국·일본 대비 ‘3배’ 이상” ‘반쪽짜리 법안’ 비판 속출···PA 법제화 내용 위주 구성 “기준도 제재도 부재···의사 업무 공백 메울 수단일 뿐”

2024-09-04     이승준 기자
서울 소재 모 2차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연차를 특정 시기 또는 상황에 소진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인으로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지목된다. [사진=연합뉴스, 그래픽=이승준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을 두고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간호사들이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많은 ‘1인당 환자수’로 연차마저 원하는 때 쓸 수 없는 근무여건 속에 있지만 정작 간호법에는 이에 대한 보호장치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이뉴스투데이의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소재 모 2차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연차를 특정 시기 또는 상황에 소진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 시기 또는 상황에 연차를 쓰고 싶지 않더라도 간호사들의 근무표에 비자발적인 연차 사용이 반영된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당 병원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암묵적으로 근무표에 강제로 연차를 넣고 작성하는 등 강제 연차 소진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간호부는 강제 연차 소진으로 올해 ‘연차 거지’가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향후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간호부에도 전체 공지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병원에 재직 중인 또 다른 관계자도 “부서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오프(휴무)를 신청한다고 하면 그냥 오프로서 쉬는 게 아니라 연차를 써가면서 쉬게끔 하곤 했었다”면서 “연차 강제 사용 관련해서 노조에서도 병원 측과 협상할 예정이라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금지되는 수준의 고강도 근무 스케줄도 강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호주에서는 3연속 나이트(야간)와 3연속 데이(주간)를 금지하고 4일 연속 근무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가 보여준 간호사 근무표에는 호주에서 제한되는 사항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원인으로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꼽힌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는 오래전부터 간호계 전반의 문제로 지목돼 왔다. 간호사 한 명이 맡아야 할 환자가 너무 많아 근무여건의 저하가 발생했고, 해당 병원의 경우처럼 연차를 원하지 않을 때 쓰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자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이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안에 간호사들의 오랜 염원인 1인당 환자수 완화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간호법은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진료 행위를 법제화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이번에 통과된 간호법에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이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나 이를 어겼을 경우 제재할 수단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성명문을 내고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정하고 기준 미달 시 처벌하는 ‘간호인력인권법’을 발의하고 추진했지만, 이번 간호법에는 해당 내용이 빠졌다”며 “그동안처럼 법으로 정하지 않은 인력 기준을 준수할 의료기관은 없다”고 비판했다.

통계상으로도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1인당 환자수는 해외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집계 결과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기준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수는 16.3명에 달했다. 이는 미국(5.3명)·일본(7.0명) 등 선진국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번 간호법만으로는 간호사 처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료연대본부는 “OECD 평균에 비해 훨씬 낮은 활동간호사 비율, 높은 이직률, 지방 병원의 간호사 수급난 등은 간호인력 처우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동시에 이번 간호법 취지가 의료공백 해소에만 치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료연대본부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직역 간 갈등을 이유로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는 의사 업무 공백을 메울 수단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은 이번에도 충분한 간호인력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간호법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데 보호장치는 없었으며, 환자와 간호사의 안전은 모두 간호사의 숙제로 남았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