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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새는 K바이오, ‘R&D=상폐’ 공식 머지않았다

업계 특성 미반영 ‘법차손’에 조건 완화 촉구 미국 90% ‘적자 상장’···“시장평가 중심 전환” ‘창업자 중심’ 경영 구조로 무리한 임상 강행 “‘오너 편중’된 리스크 지속가능성 위협 우려”

2024-10-03     이승준 기자
바이오 업계에서 '법차손 제도'가 문제시되고 있다. 업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상장 유지 조건이 무리한 임상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프리픽]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바이오 업계가 긍정적인 투자 전망 속에서도 주주들의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적 현실에 창업자 중심 지배구조가 맞물리면서 연구개발(R&D)을 계속해도 상장폐지 위기에 놓일 형국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한국바이오협회가 발간한 ‘2024년 상반기 국내외 바이오제약기업 파이낸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바이오 업계 투자는 긍정적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반기 IPO로 조달된 금액(11건, 44억 달러)은 이미 2022년(22건, 35억 달러)과 2023년(16건, 29억 달러)을 넘어섰다.

그러나 주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전업 투자자 A씨는 “바이오 주식은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오래 두고 봐야 하는 종목인데 그러기에는 위기에 빠지는 기업이 너무 많다”며 “투자한 기업이 상장폐지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불안감 못 놓는 업계···“업계 특성 반영 못한 법차손 제도”

업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이오 업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제도가 주주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우려하게 만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계 내부에서는 이 상태로 R&D를 지속했다가는 대규모 상장폐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제기된다.

이런 배경에는 ‘법차손(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 손실) 문제’가 꼽힌다. 해당 제도는 자기자본 50% 초과(또는 10억원 이상)의 법차손이 최근 3년간 2회 이상일 경우 해당 기업을 코스닥시장 관리종목 지정 사유 및 퇴출 요건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당장 제도를 따라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상장 유지가 ‘발등의 불’이 된다. 그러나 이 제도에서는 기술성장기업(우량기업부 기업 제외) 상장일에 속한 사업연도 포함 3개 사업연도가 미적용된다. 반면 특례상장한 바이오헬스 스타트업 중 법차손 요건 미충족 비율은 83%에 달한다.

그런데 다수의 바이오 기업들은 대규모의 초기 투자와 장기간의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통상 신약개발에는 10~20년간 1.5~2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임상에 진입한 물질이 최종 허가까지 성공할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바이오 기업들의 상장 유지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상장 이후 장기간 기업의 재무성과가 개선되기 어렵고 상장 전후 시장평가 가치의 특성 또한 일반상장 기업과 기술평가 특례상장 바이오 기업이 현저히 다르다는 게 골자다.

반면 바이오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주관사 책임 아래 자율상장이 이뤄지고 있다. 엄격하지 않고 간단한 상장요건 아래 적자기업도 상장이 가능하며, 최소한의 상장 유지 조건으로 장기간 적자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바이오제약 기업 중 90%가 적자 상장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제도적 고착(Lock-in) 효과를 고려해 현행 관리종목 지정 프레임워크는 유지한 채 법차손에서 기술평가 특례상장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려 연구개발비를 제외해야 한다”며 “관리종목 지정 요건을 ‘시장평가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상 강행’ 등 떠미는 지배구조···“이사회 위주 개편 시급”

업계의 지배구조 또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다수의 바이오 기업들은 창업자 중심 경영 구조를 띤다. 법차손 문제로 단기간 내 순이익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에 오르게 되는 현실과 맞물리며 무리한 임상을 강행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면서 VC(벤처캐피탈) 위주 생태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지금처럼 창업자가 위험을 부담하고 VC는 재무적 투자자 역할을 맡는 대신 VC의 경영지배 투자를 허용해 VC가 포트폴리오 기업에 위험을 분산하거나 VC 주도 기획창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대표적 사례로 ‘신라젠’이 있다. 신라젠은 지난 2022년 1월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뒤 개선 과제를 수행한 후 겨우 거래를 재개했다. 당시 VC 투자를 받지 않아 견제할 주주가 없는 가운데 경영진이 무리하게 임상을 추진하다가 위기에 직면했다.

차라리 조기 폐업이 가능한 구조로 가는 게 맞다는 관점도 있다. 실제로 코스닥 일반상장 바이오의료 기업 중 40%가 시총 1000억원 미만에 성장도 폐업도 없는 상태로 집계됐다. 그러나 ‘기업=창업자 소유’라는 국내 지배구조가 조기 폐업을 결정하기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견제 기능이 부족한 창업자 중심 경영 구조인 우리나라와 달리 주주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한 이사회 중심 경영이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조기 폐업 결정이 용이한 구조를 만들어 자원 배분의 효율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창업자에 쏠리는 과도한 위험 부담 등 국내 생태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순간이 올 수 있다”며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발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미국과 연결·통합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장 이 같은 생태계로 전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경력 전문인력 풀이 쌓이고, VC도 건당 투자 규모를 키워 포트폴리오 기업에 이사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도적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고 점쳐진다.

오랜 기간 제약바이오 업계에 몸담은 바 있는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현행 법차손 규정을 폐지하거나 완화하자는 입장이지만 엄밀히 따져서 상장규정은 금융위원회에서 승인해줘야 해 절차가 복잡하다”며 “어떻게 완화할지, 상위법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