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환 신부의 생전 발언이 다시금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959년 처음 한국에 당도한 지정환 신부는 임실 마을에 치즈 제조법을 전파시키고 한국 치즈 산업에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지난 2016년 한국 치즈산업을 발전시킨 공을 인정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바 있다.
지난해 그는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벨기에에 계신 부모님에게 치즈공장을 지어야 하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며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치즈를 싫어하더니 제정신이냐’고 되물었다”고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본인이 치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직접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찾아갔다. 모두가 비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임실 마을에 치즈 제조법 전파에 성공했다.
그러던 중 나이 마흔에 다발성신경경화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까지 더욱 영역을 넓혔다.
한편, 지정환 신부는 당시 인터뷰에서 “내 장례식에 노사연의 ‘만남’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우리들의 모든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다.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한다”고 언급했다. 한국인보다 더욱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지난 13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 2024.1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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