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타2 엔진 결함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 |
현대기아자동차의 ‘세타2 엔진’ 차량 리콜은 축소·조작된 것이고, 그 이면에는 현대차그룹 최고위층의 비호 및 은폐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치 음습한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던 ‘세타2 엔진 리콜에 대한 의혹’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 ‘현대차, 세타2 엔진 차량 17만대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같은 날 북미에서도 세타2 엔진 130만대의 리콜이 발표됐다. 그로부터 3일 뒤인 지난 10일 현대차의 공익제보자 김광호 전 품질강화1팀 부장을 만났다.
세타2엔진 (좌: GDI, 우: Turbo-GDI) |
그는 현대차에서 25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2015년 9월 진행된 미국의 세타2 엔진 47만대 리콜을 현장에서 담당했던 직원이다. 동시에 세타2 엔진의 문제점을 세상에 폭로해 이번 리콜을 이끌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쉬지 않고 2시간여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바로 정확한 리콜사유와 리콜을 둘러싼 현대차 내부의 움직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리콜은 잘못됐고 그 배경에 정의선 부회장의 결정이 숨어있다”라는 것이 김 전 부장의 생각이다.
세타2 엔진 결함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 |
현대기아차는 이번 리콜 사유를 ‘엔진 제조공정에서 발생한 이물질이 베어링 등에 손상을 입혀 주행 중 시동 꺼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김 전 부장은 “주행 중 시동 꺼짐과 엔진 파손은 이물질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GDI 엔진의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세타2 GDI 엔진을 장착한 차량 전체를 리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핵심은 엔진의 구조적 결함인데 현대차의 주력 엔진이 MPI에서 GDI로 바뀌면서 폭발력이 기존보다 66%(163마력→271마력) 이상 세졌다. 하지만 이를 엔진 설계에 반영하지 않고 MPI 때의 약한 부품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결국 출력을 감당하지 못한 부품에서 변형이 일어나 문제가 발생했다. MPI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세타2 엔진 |
그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했다.
“MPI에서 GDI로 가면서 콘로드 베어링과 부품이 허용강도에 미달했다. 2015년 9월 미국 리콜을 앞두고 현대차의 내부 분석은 ‘베어링 강성이 약하고 소결(고체가루를 밀착시켜 만든 금속)품으로 제작된 콘로드의 인장강도가 GDI의 출력을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해 엔진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콘로드가 강하면 베어링이 소착(눌어붙는 현상)돼도 거기서 끝나는데(과거 MPI 엔진처럼) GDI는 출력이 세서 가장 약한 부분인 콘로드 중간이 부러져 엔진블록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10건 이상 보고됐고,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진 것은 1000건이 넘는다.”
그는 깨진 엔진블록 사이로 엔진오일이 흘러나와 배기 쪽으로 옮겨 붙어 불이 나는데, 2015년 6월 미국에서 발생한 2건의 화재를 미국정부가 조사하기 시작하니까 바로 자발적 리콜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이런 엔진의 구조적 결함을 알면서도 감추고 ‘이물질에 의한 베어링 손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김 전 부장은 이 문제의 핵심은 ‘비용’이라고 했다.
“2015년 9월 미국에서 리콜을 시작하기 전에 회사 내부적으로 원인과 과정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7~8월에 리콜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 구조적인 결함을 지적했다. 나도 그 회의에 참석해서 잘 안다. 하지만 최종 발표에서 리콜 이유가 바뀌었다. 구조적인 결함이 아니라 앨라배마 공장의 청정도 문제 때문에 크랭크샤프트의 금속 잔여물이 생겼고 이로 인한 엔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돈이다 |
그럼 현대차는 왜 최종보고서와 다른 리콜 사유를 미국에서 발표했을까 궁금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당시 우리가 계산한 리콜 비용은 차량 1대당 200만원 정도였다. 대상차량이 47만대였으니까 약 9400억 원이다. 만약 엔진의 구조적 결함에 의한 강제적 리콜이라면 47만대를 모두 리콜해야 한다. 하지만 이물질에 의한 자발적 리콜은 현대차가 대상차를 검사해 일부만 리콜하면 된다. 당시 2~5% 정도 리콜한 것으로 안다. 넉넉잡아 5%라고해도 470억이면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8930억원을 절약한 셈이다.”
김 전 부장은 이번 국내 17만대와 북미 130만대의 리콜도 비슷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북미와 국내에서 팔린 문제의 세타2 엔진 차량이 약 250만대 정도라면 엔진 결함을 인정했을 때 리콜 비용은 모두 5조원이다. 반면 이물질에 의한 결함이라고 우겨서 선별적으로 리콜하면 미국의 예처럼 5%로 계산해도 2500억원이면 해결된다. 그만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국내 17만대 리콜도 생색내기용으로 몇 대 선별해 리콜해주고 끝낼 수 있다.
◇CES 2017 현대자동차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김 전 부장의 말대로라면 리콜 관련 최종보고서가 허위로 꾸며졌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결정은 누가 내렸을까.
“리콜 문제 특히 미국에서의 리콜은 최종 결재라인까지 올라간다. 제가 알기론 정의선 부회장은 당연히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아마 회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다. 이런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에 몇 명 없다고 봐야한다. 최고 결정권자에게 구조적인 결함이라고 보고하는 동시에 이물질에 의한 결함으로 바꿔서 리콜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결책까지 보고했을 것이다. 5조원이 들것을 2500억원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결정권자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너무나 뻔한 얘기 아닌가.”
현대차에 바라는 점에 대해 설명하는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 |
그는 공익제보를 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도 이야기했다.
“부회장까지 보고된 내부 자료에 엔진의 구조적 결함이라고 명시돼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다. 바로 잡아야 한다. 리콜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뒤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엔진이 깨져 죽을 수 있다. 비용을 아끼려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있으면 안 된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익제보자로 인정해 복직 결정을 받았고, 지금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가 잘못된 것을 감추지만 말고 함께 풀어갔으면 좋겠다. 올해가 고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지 50주년 되는 해인데 지금처럼 한다면 앞으로 10년도 살아남기 힘들다. 국민들에게 ‘흉기차’라는 소리까지 듣는데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앞으로 50년 이상 더 살아남으려면 멀리 내다보고 가야한다. 흉기차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겠나.”
현대차 사옥 |
이에 대해 현대차는 “김광호 전 부장이 어떤 문건과 근거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코멘트하기 힘들다”면서 “만약 엔진의 구조적인 결함이 문제라면 2015년 9월 미국에서 리콜할 때 이물질에 의한 리콜이 아니라고 판정이 났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창현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더드라이브(TheDriv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