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알고리즘(소프트웨어)으로 경기도 수원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운전자 무개입 주행’ 시험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악천후 등 비상 상황을 제외하고는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레벨 4’ 자율주행 실현을 위해 필요한 선행 기술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선행 연구개발(R&D) 조직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는 지난해 10월 수원에서 강릉에 이르는 200㎞ 구간에서 운전자 무개입 주행 시험에 성공했다. 기술 개발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램프 구간(높낮이가 다른 두 도로 등을 연결하는 구간) 주행, 특수 목적차량 인식, 자동 차선 변경 등의 문제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지만 SAIT이 개발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최소 레벨 3를 충족하고 레벨 4 실현을 위한 여러 추가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분류에 따르면 자율주행 레벨 3는 고속도로 같은 일부 조건에서 자동차가 주도권을 갖고 스스로 운행하고 레벨 4는 비상 상황 등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자가 개입한다.
이는 2017년 삼성전자가 국토교통부의 자율주행차 임시 운행 허가를 받은 지 5년 만에 거둔 성과다.
SAIT는 내부적으로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핵심 기술을 개발해 양산 중인 레벨 2와 상용화 단계인 레벨 3 솔루션에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차량용 반도체와 부품, 솔루션 사업과의 공조는 테슬라나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목표인 ‘제조 상용화’와는 다른 방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련 사업부에서 필요로 하는 시점이 오면 기술을 내주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부터 자율주행 SW까지…삼성, 900조 '미래차 전장' 주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자율주행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전장 사업 확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아닌 삼성전자가 자율주행 알고리즘 기술을 장기 과제로 놓고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에는 5년 뒤 90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미래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기도 하다.
이재용 회장도 동분서주…퀄컴·인텔 등 맞서 주도권 확보
자율주행을 비롯한 미래차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삼성의 의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회장의 동선에서도 읽을 수 있다. 회장 취임 직후 이 회장은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 시설을 둘러봤고 지난해 말에는 올리버 칩세 BMW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전장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 출장을 떠난 10일(현지 시간)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머스크 CEO와 만나 자율주행 반도체와 관련한 여러 대화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책임지는 최시영 사장도 배석했다.
'종합 미래차 플랫폼' 속도전…전장사업 전사적 역량 집중
삼성그룹이 자율주행차의 ‘두뇌’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미래차 시장에서 마지막 남은 ‘퍼즐’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 등은 BMW·페라리·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광범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그룹 차원에서 전장 기술 무기를 갈고닦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와 부품,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갖춘 상황에서 스스로 배우고 발전해나가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보유한다면 일종의 ‘종합 미래차 플랫폼’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도 자연스럽게 극대화할 수 있다. 차세대 시스템온칩(SoC) 설계 구조를 고려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제품 개발에 활용하거나 특정 전장 부품의 한계를 극복하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소프트웨어 기술 적용 방안을 제안하는 식이다.
외연 확대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2019년부터 테슬라에 14나노 완전 자율주행(FSD) 반도체를 시작으로 자율주행 칩을 공급해왔고 2월에는 첨단 5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문 기업 ‘암바렐라’의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발표했다. LSI 사업부는 BMW에 차량용 반도체 시제품을 공급하며 고부가 설계 프로젝트를 타진하고 있다. 메모리 사업에서는 지난해 7년 연속으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 한때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던 하만 역시 지난해와 올해 1분기에 실적 신기록을 쓰며 사업 안정화 궤도에 접어들었다.
한편 삼성 이외에도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경쟁은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다. 모바일 칩셋 강자인 퀄컴은 이달 초 이스라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오토톡스를 인수했다. AI 반도체 분야 강자인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솔루션 ‘엔비디아 드라이브 오린’을 볼보에 도입하고 2025년 재규어랜드로버에 차량용 전용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텔(모빌아이), 구글(웨이모), 애플 등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 시장 규모는 내년 4000억 달러에서 2028년에는 7000억 달러(약 924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드라이브 / 전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더드라이브(TheDriv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