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불이 붙었어요! 빨리 내려요! 빨리!”
201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기아차 중형 세단 K5 소유자 A씨는 아이들 3명을 뒷좌석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분당으로 가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 차들이 빵빵거리고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저 차들이 왜 저러나 싶어서 듣던 음악을 끄고 창문을 내렸더니, “차에 불이 붙었다. 빨리 내려라”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놀란 A씨는 차를 세우려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작동을 하지 않고, 조향장치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일가족 5명이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
마침 곡선주로에 들어선 기아차 K5는 가드레일을 받고 속도가 줄어들더니, 전봇대를 들이받고서야 겨우 멈췄다.
얼른 내려서 보니 K5 조수석 아래 시뻘겋게 불이 붙어있었다. K5가 지나간 길에는 불길이 길게 죽 늘어져 있었다. A씨는 “당시 화재는 소방서 기록에도 그대로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일가족이 내려서 차량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순간 K5는 굉음을 내며 ‘펑’하고 폭발해버렸다. 차량 전체에 불이 붙어 K5가 전소해버린 대형 사고였다. 도색한 페인트가 녹은 것은 물론, 타이어와 엔진룸까지 전소됐다.
A씨에 따르면, 이 차는 구입한지 26개월에 4만 6000km를 운행했다. 36개월 할부로 구입한 차량으로 아직 할부금도 다 내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사고가 나기 불과 2개월 전 정기검진에서도 ‘양호’ 판정을 받았던 차다.
하지만 기아차 서비스센터에서는 “엔진룸이 전소돼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면서 “차체 결함을 증명할 수 없어 보상도 불가능하다”라고 판정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차에 불이 붙었다고 위험한 상황을 알려준 주변 운전자분들이 아니었으면, 일가족이 몰살할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면서 “주행 중 차량에 화재가 난 사고가 차체 결함이 아니라고 하니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 황당한 것은 기아차 수원센터에서 ‘전국 다른 지점에서 MPI 엔진을 장착한 K5 차량 중 화재 사건으로 보상한 사례가 있다면, 우리도 보상을 검토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들었을 때였다”라며 “달리던 차가 폭발했는데 제조사가 잘못이 없다면 차를 구입한 차주가 책임을 지라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A씨는 뒤늦게 언론사에 제보한 이유에 대해 “당시에는 워낙 경황이 없었고, 생명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면서 “하지만 이런 사건을 널리 알려 기아차는 차를 더 잘 만들고, 운전자들에게는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제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더드라이브 / 이장훈 기자 auto@thedrive.norcal-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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