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도움이 절실한 어느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그 기구한 사연에 억장이 무너지고
타인의 불행에 관심조차 없던 나의 이기적 삶이
몸서리나게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비슷한 사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라? 이게 뭐야?
울컥했던 마음에 슬며시 제동이 걸린다.
뭔가 수상하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또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가?
야들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를 호구로 보는 거야?
여기저기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손을 내미니
반성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되레 화가 난다.
이들은 이른바 공익광고다.
오염된 물을 먹어야 하는 오지 어린이
기아 병마에 시달리는 난민촌 어린이
먹을 게 없어 해골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
국내 결손가정의 희귀병 어린이
불치병 엄마와 소녀 가장
가난, 고독과 싸워야 하는 독거노인.
기후변화에 갈 곳 잃은 북극곰.
국내외, 남녀노소, 인종을 안 가리고
빈곤, 기아, 질병, 물 부족 등 이유도 갖가지다.
심지어 북극곰까지 출연해 손을 내민다.
구성과 형식도 대동소이하다.
각기 다른 기관 이름을 걸었을 뿐
비슷한 스토리텔링으로 최대한 눈물샘을 자극한다.
마치 홈쇼핑처럼 시청자 주머니 털기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시청자는 졸지에 바보가 된 느낌이다.
공익광고는 방송사마다 몇 편씩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하는 걸로 안다.
방송사들로서는 돈도 안 되는 것,
광고 없는 시간, 혹은 광고료가 가장 싼 시간에
한꺼번에 털어내는 모양이다.
이러한 편성은 공익 아닌 공해다.
안타까운 사연들을 비슷한 스토리로 몰아 내보냄으로써
사연의 신빙성을 깨뜨리고
선의의 시청자까지 기가 질리게 한다.
그래도 냉소적인 마음을 추스르고
어디에 얼마를 내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게 짠한 표정을 짓던 출연진은
대체 얼마를 냈을까?
그토록 남의 눈물을 뺐다면
자긴 전 재산을 털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만일 한 푼도 안 냈다면
그의 눈물은 연기요, 사기다.
그에 속아 주머니를 털면 나만 바보 되지 않겠는가?
지갑을 열지 않고 그냥 뭉갤 핑계가 생겼다.
열려던 지갑을 그냥 닫는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글은 더드라이브 외부 필진이면서
전(前) 신문기자, 현(現) 농부인 김지완 님의 칼럼입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고 있으며 ,김지완 님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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