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
얼마 전 우연히 JTBC 드라마 '허쉬'를 봤다.
기자 세계를 다룬 드라마인데
보면서 눈이 번쩍, 가슴이 쿵쾅 뛰었다.
바로 내가 살아온, 내가 경험한 세계가
실제 그대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곳에 내가 있었다.
모 선배가 있었고, 모 부장이 있었고
모 국장이 나왔다.
친하게 지냈던 모 후배가 있었고
늘 눈총 받던 모 기자가 있었다.
한땐 정열이 넘치던, 한땐 절망적이던
지나간 우리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눈물까지 찔끔 났다.
방송사 측은 이 드라마를
< 큐대 잡는 날이 많은 '고인물' 기자와
밥은 펜보다 강하다는 '생존형' 인턴의 쌍방 성장기이자
월급쟁이 기자들의 밥벌이 라이프를 그린 드라마 >
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자가 나오는 드라마가 많지도 않지만
극중 기자의 모습은 대부분 정의 혹은 비열,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비교적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기자 모습이 그려질 것 같다.
1,2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기대가 크다.
드라마의 무대는 디지털뉴스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물먹은 기자들이 가는 곳인가 보다.
나도 그곳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지금은 남의 뉴스를 베껴 조회수 올리는 부서로 설정됐는데
우리 때는 디지털 초기라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취재부서에서 쓴 기사를 신문에 싣기 전
인터넷에 먼저 올리는 게 주업무였다.
'hush'는 우리 말로 '쉿' 이란다
침묵 또는 조용히 시키기를 의미한다.
기자에게 침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외부 권력이 아니다.
언론사 내부, 경영층과 고위 간부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외부세력과 결탁해
일선 기자들의 기사를 왜곡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쉿'이 '비밀 탐사보도팀'을 의미할 모양이다.
1,2편에서는 신문사 편집국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한물 간 기자들, 힘없는 부서에 유배된 기자들이
비밀 탐사보도팀을 결성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후로는 기자다운 기자로 재탄생한 주인공들이
통쾌하게 악을 응징하고 진실을 밝히는 모습이 그려질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픽션이다.
그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성공하고, 그러고도 언론사에 살아남는다면
그야말로 허구이며 헛소리다.
시원하고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의 언론은 내가 있을 당시보다 더 열악하니.
바로 며칠 전
논설위원으로 있던 옛 후배가 사표를 냈다더라.
회사의 논조와 다른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유배'를 당한 모양이다.
그는 유배보다 제 발로 걸어나가는 길을 택했다.
이 기자는 그래도 유력 부서 부장도 지낸 걸로 안다.
회사의 신임이 상당했다고 봐야 하고
그만큼 본인도 엄청 애를 썼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그마저 사표를 냈다면.....
우리 시절엔
이른바 '의식'있는 기자 대부분은
겨우 차장을 달거나 그도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또는 유배지에서 혼자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출처] 허쉬|작성자 마음 가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