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부리람 창인터내셔널서킷 |
태국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부리람(Buriram)은 인구 150만의 조용한 중소도시다. 지명인 부리람은 ‘행복의 도시’라는 의미.
전통적인 농업도시에서 상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부리람의 주민들에게는 2가지 큰 자부심이 있다. 하나는 ‘부리람 유나이티드 FC’로 1970년에 창단한 프로 축구 클럽이다. 2011년에 태국 리그컵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 태국 FA컵 우승 등 3관왕을 차지한 강팀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또 하나는 창 인터내셔널 서킷(Chang International Circuit)이다. 2014년 개장한 이곳은 태국 유일의 국제자동차연맹(FIA) 공인 1등급 서킷이다. 개장 이후 태국 모터스포츠의 심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슈퍼 GT, 월드 슈퍼바이크 등 국제 유명 모터스포츠 경기장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올해는 태국 최초로 모토 GP의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포뮬러 레이스카를 운전할 절호의 기회
최근 미쉐린 타이어가 이곳에서 ‘미쉐린 패션 익스피리언스’를 열어 관심을 모았다. 포뮬러 레이스카를 타고 직접 서킷을 질주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동차 전문기자들과 셀러브리티, SNS 스타, 자동차 전문가 등이 초청을 받았다. 미쉐린 타이어를 장착한 포뮬러 레이스카를 타고 서킷을 달리며 타이어의 성능을 체험하게 하려는 기획이다.
일반인이 포뮬러 레이스카를 직접 운전하는 것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일이다. 기자는 물론 동행했던 15년차 자동차 전문기자도 포뮬러 레이스카를 직접 운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낮 기온이 섭씨 38℃를 오르내리는 땡볕의 9월 어느 날 창인터내서널서킷에 각국의 참가자들이 집결했다. 트랙에 들어가기 전 레이싱 슈트와 레이싱 슈즈를 갖추고 드라이빙 교육을 받았다. 내용은 서킷에서의 주행방법, 추월 방법, 자동차 고장 시 정차 요령, 화재 시 대피요령 등이고 약 30분간 진행됐다.
#배기량 1600cc 엔진에서 최고 240km/h까지
교육이 끝난 뒤 트랙 바로 옆 레이스카 차고로 향했다. 차고 안은 조명을 모두 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쓰리, 투, 원, 제로… 사회자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트랙 쪽 셔터가 올라가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레이싱카는 당당한 위용을 드러냈다.
‘애계, 이건 너무 작은데?’ 그렇다. 우리가 평소에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포뮬러 1 레이스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F1 레이스카 가격이 얼만데.’(F1 머신의 정확한 가격은 비공개지만, 대략 100억 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조금 짧은 전장에 무게는 470kg로 살짝 왜소(?) 해 보이기까지 하는 레이스카는 바로 포뮬러 4였다. 고(GO) 카트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포뮬러의 세계로 들어서는 주니어 레이싱 드라이버의 포뮬러 입문 카인 것이다.
미쉐린이 준비한 F4 레이스카는 1.6리터 엔진에 최고속도 240km/h, 최고출력 185마력을 발휘한다. 카본 파이버 새시, 레이싱 슬릭타이어, 5단 패들 시프트 수동 기어 박스 등을 갖추고 있다. 작고 가볍지만 가속력과 코너 스피드, 주행성능은 일반 자동차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차량 1대의 가격은 약 1억 5000만 원 내외.
장착된 레이싱 슬릭타이어는 표면에 아무 무늬가 없이 매끈하다. 덕분에 도로에 닿는 표면적이 넓어 접지력이 좋다. 조심해야 할 점은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물 배출구가 없어 바닥이 조금이라도 젖어 있으면 그대로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심장을 울리는 엔진 소리
시선처리, 기어 넣는 법, 가속페달 밟는 법(너무 살짝 밟으면 시동이 꺼진다), 트랙에서 주행요령 등에 대해 간단하게 교육을 받은 뒤 F4에 몸을 구겨 넣었다. 온몸에 테이프를 감듯 안전벨트로 몸을 차에 완전히 밀착시킨 뒤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버튼을 눌러 시동을 켰다. ‘터덩, 텅 터 더더더 텅~’ 운전석 바로 뒤에 있는 엔진의 거친 숨소리가 얇은 시트를 타고 넘어 심장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발끝부터 시작되는 기분 좋은 긴장감에 ‘꼴딱’ 침이 절로 넘어간다.
기어를 넣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며 천천히 출발했다. 약 50m 앞의 선도차 포르쉐 718이 이끄는 대로 서서히 속도를 높여 트랙에 들어섰다. 전체 서킷의 길이는 4.5km. 처음 한 바퀴는 코스를 익히고 타이어를 예열시켜 표면력과 그립감을 높이기 위해 천천히 달린다. 슬릭타이어는 물이 끓는 온도인 섭씨 80~100℃에서 최적의 성능을 낸다.
두 바퀴 째로 접어들자 선도차가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나도 따라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부왕, 부와 와 앙~~’ 꼬리물기를 하듯 선도차의 꽁무니를 따라 질주하니 어느덧 다시 출발점. 세 바퀴째부터 계기판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바퀴 수가 증가할수록 속도와 함께 심장박동수도 빨라진다.
#체감 속도는 300km/h 지만 실제는?
서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코너링이다.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충분히 속도를 줄이고 진입한 뒤에는 급가속으로 최대한 빠르게 코너를 빠져나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차선 바깥쪽에서 진입해 코너의 제일 안쪽 차선을 밟은 뒤 바깥쪽으로 빠져나오면 속도를 덜 잃는다.
최고속도 190km/h, 평균속도 120km/h 내외로 트랙을 몇 바퀴 더 질주한 뒤 속도를 줄였다. 아무리 F4라고 해도 ‘괴물’의 핏줄은 못 속인다. 포뮬러카는 엉덩이를 거의 지면에 붙이고, 목만 차체 밖에 내놓고 운전하기 때문에 몸으로 체감하는 속도는 실제의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직선코스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순간 목이 뒤로 꺾이며 마치 300km/h 이상으로 달리는 듯 착각할 정도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다.
바람과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초긴장 속에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포뮬러 레이스는 운전자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안겨준다. 실제로 F1 선수들은 대회를 하루 치르고 나면 약 3~4kg까지 체중이 빠진다고 한다.
#포뮬러의 승부는 결국 타이어에서 갈려
트랙에서는 몰랐는데 레이스카에서 내리려니 갑자기 맥이 탁 풀리고, 무중력상태로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솜을 넣어 만든 두꺼운 슈트, 가죽장갑, 바라클라바, 헬멧까지 완전히 무장한 채로 긴장 속에 트랙을 달렸으니 온몸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차고로 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살짝 뒤를 돌아봤다. 순간 레이스카가 ‘벌써 가느냐?’고 속삭인다. ‘내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지.’ 다시 돌아가서 운전대를 잡고 싶은 욕망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쑤욱 치밀고 올라온다. 그냥 딱 한 바퀴만 더 돌면 좋겠다. 교관과 하이파이브를 한 뒤 장갑과 헬멧을 벗으니 비로소 가슴이 조금 진정됐다.
포뮬러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타이어다. 요즘엔 엔진과 차체 등 기계적인 측면에서의 기술 격차가 크게 줄어, 결국 타이어 기술과 이것을 다루는 드라이버의 운전기술에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현재 F1 공식 타이어 공급업체는 피넬리다. 지난 2007년까지는 미쉐린, 브리지스톤 등 여러 제조사가 참여해 기술 경쟁을 벌였으나, FIA가 1개 업체 단일 공급 체제로 바꾸면서 2010년까지는 브리지스톤이, 2011년부터는 피렐리가 단독으로 타이어를 공급한다. 하지만 피넬리의 계약이 2019년 종료되면서 미쉐린이 다음 계약을 노리고 있다.
<태국 부리람=조창현 기자 changhyen.cho@thedrive.norcal-art.com> [저작권자ⓒ 더드라이브(TheDriv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