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의 클리오와 메간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간 것은 순전히 르노 클리오(CLIO)를 시승하기 위해서였다.
2017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취재를 준비하면서 세운 또 하나의 계획은 클리오 시승이었다. 올 4분기 국내 출시를 앞둔 클리오를 유럽에서 먼저 타보고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초 클리오 시승을 위해 독일 현지 렌터카를 생각했다. 모터쇼를 취재하면서 남는 시간에 렌트한 클리오를 타고 주변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국내에 수입될 4세대 클리오 부분변경 모델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해봤지만, 꼭 클리오를 빌려주겠다고 약속할 수 없단다. 클리오 ‘급’을 예약해야 하고, 클리오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클리오를 타지 못한다면 굳이 렌트할 이유가 없었다.
서킷 전경 |
르노 클리오와 메간 서킷 |
#클리오 시승 위해 독일서 파리로
결국 르노삼성자동차에 SOS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모터쇼 기간 클리오를 시승차로 내주기는 어렵고, 프랑스 파리 인근 트랙에서 클리오를 잠깐 시승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모터쇼 취재를 서둘러 끝내고 파리행 고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
B세그먼트 해치백 클리오는 탄탄한 성능에 동급 최고 사양을 갖춘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1990년 처음 출시돼 지금까지 4세대를 거치며 130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특히 11년 이상 유럽 동급 판매 1위, 19년 이상 프랑스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소형차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국내에 들어오는 차는 4세대 부분변경 모델로 지난해 유럽에서만 31만대 이상 팔리며 이미 검증을 받았다.
시승은 파리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데파르트망의 드뢰 트랙(Dreux track)에서 진행됐다. 인스트럭터에게 코스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서킷으로 내려갔다. 입구에는 르노가 자랑하는 2대의 소형 해치백이 세워졌다. 은색 클리오와 파란색 메간 GT다. 국내에 곧 출시될 신차를 현지 서킷에서 먼저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다. 서킷을 돌며 마음껏 차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킷은 ‘차가 출발해 코스를 돌아 다시 제자리로 순환하는 회로 형태의 끊이지 않은 선’을 의미한다. 서킷은 일방통행이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속도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경주용 도로다.
#200마력짜리 아름다운 소형 해치백 메간 GT
드뢰는 모두 5개의 서킷이 있는데, 시승은 ‘뷔떼세(vitesse)’라고 명명된 2.1km 길이의 서킷에서 진행했다. ‘속도’라는 서킷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눈에 봐도 급하게 꺾인 헤어핀 구간과 직선로, 좌우 곡선주로 등이 골고루 배치돼 테스트에 안성맞춤이다.
먼저 파란색 신형 메간 GT의 조수석에 올랐다. 인스트럭터가 운전대를 잡고 서킷을 한 바퀴 돌며 코스를 설명하고 시범을 보였다. 이윽고 자리를 바꿔 운전석에 앉았다. 이 차는 2015년 처음 공개돼 아름다운 디자인은 물론 고성능에 재미있는 주행까지 가능해 유럽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6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에 EDC(Efficient Dual Clutch) 7단 변속기를 물렸다. 2400rpm에서 최고출력 205마력, 최대토크 28.6kg.m을 발휘한다. 이런 작은 차가 200마력 이상의 출력이라면 그 주행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실내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대시보드와 센터패시아 등 곳곳이 르노삼성의 SM6, QM6와 닮아있다.
#4컨트롤이 핸들링 마술을 만들어
출발 신호와 함께 서서히 속도를 높여 엔진을 달궜다. 첫 번째 만나는 긴 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장 안쪽을 타고 돌았다. 옆에서 인스트럭터가 적절한 속도를 안내했다. 어림잡아 300m는 넘어 보이는 직선로 초입에서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순간 배기음이 커지며 차가 앞으로 튀어나갔고, 몸은 시트에 파묻혔다. 곧바로 이어진 헤어핀 구간에서 급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며 크게 원을 돌아 빠져나왔다. 마치 카트를 타는 것처럼 운전자의 의도대로 차가 움직였다. 상상을 뛰어넘는 재미있는 반응이다.
EDC의 민첩함도 인상적이다. 패들 시프트 작동과 동시에 기어를 바꿔줬다. 자동변속기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신속함이다. 일말의 주저함이나 울컥거림 없이 운전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지간한 커브에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4바퀴가 바닥을 움켜쥐듯 안정적으로 내달렸다. 이는 4컨트롤(4Control) 시스템 덕분이다.
4컨트롤은 60km/h 이하로 주행 시(스포츠모드는 80km/h 이하) 뒷바퀴와 앞바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마치 휠베이스가 짧아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보다 정밀하고 다이내믹한 핸들링이 가능하다.
반대로 60km/h 이상으로 달릴 때(스포츠모드는 80km/h 이상)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조향 된다. 이는 휠베이스가 길어진 효과를 내며, 세그먼트가 한 단계 높은 차량을 운전하는 것 같은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케 한다.
메간 GT는 이런 4컨트롤 덕분에 우수한 접지력에 민첩하고 안정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순식간에 3바퀴를 내달렸다. 차를 바꿔 타기 위해 내린 짧은 시간, 서킷을 벗어나면서도 시선은 메간에 꽂혀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내에 들여올 계획은 아직 없단다.
#매력적이고 감각적인 클리오
두 번째 자동차이자 이번 시승의 주인공인 클리오에 올랐다. 손에 꽉 들어오는 두툼한 스티어링 휠이 인상적이다. 클리오는 여러 모델로 나오는데, 시승차는 국내에 수입되는 것과 같은 ‘클리오 dCi 90’이다. 1.5리터 dci 디젤 엔진에 6단 듀얼 클러치를 맞물려 최고출력 90마력을 발휘한다. QM3와 같은 구성이다.
국내에서 외면받는 소형차인데다가 해치백이라는 점이 걱정되지만, 유럽에서는 물량이 달려 제때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다.
클리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디자인’이다. 4세대는 지상고가 45mm 낮아지고, 전폭은 36mm 넓어졌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암팡진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측면의 어깨 라인을 두툼하게 만들고, 차체 곳곳에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볼륨을 넣어 감각적이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LED 퓨어 비전 헤드램프, C자형 주간 주행등, 3D 타입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고정형 글라스 루프 등을 갖췄다.
실내는 고급 소재로 꾸몄다. 가죽 스티어링 휠, 7인치 터치스크린, 소형차에서 보기 힘든 보스(BOSE) 사운드 시스템 등이 눈에 띈다. 특히 벨벳 소재의 두툼한 버킷 시트는 이 차의 달리기 성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가벼운 차체에 낮은 무게중심
메간 GT의 가공할 속도와 핸들링을 즐긴 뒤 곧바로 클리오를 타면 실망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는 마음으로 서킷에 올랐다.
첫 번째 만난 크고 긴 커브에서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빠른 가속은 아니지만 민첩하게 커브를 빠져나갔다. 출력은 QM3와 동일하지만, 차체가 가볍고 포지션도 낮아 주행감각은 더욱 좋게 느껴졌다.
커브를 빠져나와 직선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순간 ‘웅~’하는 소리와 함께 엔진이 깨어나면서 속도를 높여갔다. 메간 GT의 폭발적인 가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가벼운 차체(공차중량 1152kg)와 낮은 무게 중심 덕분에 경쾌하게 움직였다.
클리오는 사이드미러를 A필러 옆 유리가 아니라 아래 문에 붙였다. 운전자의 좌우 측면 시야가 넓어지고, 공기의 흐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타이어는 17인치로 소형차 치고는 큰데, 달리기를 중시하는 스포티한 구성이다.
서킷에서 과감하게 핸들을 돌려도 세미 버킷 시트가 운전자의 몸을 잘 잡아줬다. 특히 허리 지지대가 높고 엉덩이를 깊숙하게 감싸 안정적이다. 시트를 믿고 마음껏 달려도 몸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해치백의 무덤'에서 살아남을까?
전체적인 주행 느낌은 같은 동력계를 사용하는 QM3보다 민첩하고 안정적이다. 핸들링은 조금 더 타이트하면서 쫀득쫀득한 느낌이고, 소음과 진동은 보통 수준이다. 차는 작지만 르노스포츠에서 F1을 통해 축적한 스포츠 드라이빙 기술을 적용해 달리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클리오의 디자인은 크게 4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랑과 따뜻함, 간결, 부드러움이다. 공격적이거나 날카롭지 않은 부드러운 디자인에 친근함을 강조한 감각적인 모습이다. 최대토크 22.4kg· m에 공연연비는 1리터당 17km다.
박동훈 르노삼성차 사장은 “한국은 ‘해치백의 무덤’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클리오 정도의 매력이라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는 폭스바겐코라아 사장 재임 시절 해치백인 ‘골프’와 ‘폴로’를 들여와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다. 관심을 모았던 클리오의 엠블럼은 르노의 ‘마름모’를 그대로 들여올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데파르트망)=조창현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더드라이브(TheDriv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