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무래도 결정 장애가 있는가 봐요.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분 좋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부터 차를 바꾸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쉽게 선택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10여 년 타던 국산 SUV가 올 겨울 유독 추운 날씨에 말썽을 부려 이참에 새 차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선택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다.
50대 자영업자인 그는 캠핑과 낚시를 좋아해 주말이면 부인과 자주 여행을 떠나고, 평일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서울로 하루 평균 60km 가량을 출퇴근한다.
가족들과 상의해 이번에는 외제차를 구입하기로 하고 처음에 유럽차와 일본차를 놓고 저울질했다. 결국 안전과 편의사양, 크기, 가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보자동차를 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모델을 구입할지에서 난관에 부딪힌 것.
그는 예산 때문에 XC90을 포기하고 S90와 크로스컨트리를 놓고 고민 중이며. 최근에 비교 시승까지 해봤는데도 선뜻 하나를 고르기가 힘들다고 SOS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즐거운 고민을 모두 들은 뒤의 내 생각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였다.
“둘 다 좋은 차입니다. 이 정도면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떤 차를 사야 내가 더 즐겁고 오랫동안 행복할지를 본인의 마음에 물어보세요.”
자동차를 선택할 때 기능과 편의사양, 가격, 스스로의 경제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자의 감정적인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가지 조건을 비교해 사고 싶은 차가 2개 모델로 좁혀졌다면, 결국엔 마음이 끌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몇 년을 동고동락해야 하는데 탈 때마다 기분 좋고 행복한 차가 최고라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와서, 마침 최근에 볼보의 ‘더 뉴 크로스컨트리’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다. XC90과 S90에 이어 볼보가 국내 시장에 마지막으로 선보인 90클러스터 기반의 모델이다. 온-오프로드 전천후 주행이 가능하고 동시에 스웨디시 럭셔리로 무장해 최상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올로드 스페셜리스트’가 이 차의 지향점이다.
#성격과 탄생 배경
크로스컨트리는 스웨덴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견뎌낼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볼보의 노력에서 탄생했다. 매일 일상에서 주행하지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트렁크에 짐을 잔뜩 싣고 혹독한 자연으로 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만든 차가 바로 크로스컨트리다.
덕분에 평상시에는 세단처럼 얌전하게 도심을 오간다. 하지만 야외활동이 필요할 때는 즉시 SUV 이상의 적재공간과 오프로드 주행능력을 보여주는 차가 바로 크로스컨트리다. 트렁크 적재공간은 560리터이고, 2열 시트를 모두 접을 경우 최대 1536리터까지 확장된다. 특히 2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198cm의 성인이 편하게 누울 정도로 길고 넓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덕분에 텐트 없이 2명 정도는 안락하게게 차에서 잠을 자는 ‘차박(車泊)’이 가능하다.
#엔진과 파워
크로스컨트리는 유럽에서 가솔린과 디젤, 싱글터보와 트윈터보 등으로 출시됐지만, 국내에는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장착한 크로스컨트리 D5 AWD 기본(6990만원)과 프로(7690만원) 두 가지 트림만 출시됐다.
크로스컨트리 D5는 볼보가 지난 2014년 선보인 새로운 엔진 계통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적용해 중량을 45kg 가량 줄이고, 연료 효율성을 35%나 개선했다. 신형 4기통 트윈터보 디젤엔진에 8단 기어트로닉 변속기를 맞물렸다. 세계 최초로 i-ART(지능형 연료 분사 기술)을 적용하고 슈퍼차저 및 터보차저, 엔진 경량화 등을 통해 강력한 성능과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D5 모델에 들어있는 ‘파워 펄스(Power Pulse)’ 기술은 엔진의 즉각적인 터보 반응을 이끌어내 일반적인 디젤 모델과 다르게 저속에서부터 빠른 가속을 가능하게 해준다.
실제로 차체에 올라 시동을 걸 때까지는 다른 디젤차와 차이점을 못 느끼지만, 가속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으면 차체가 튀어나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공차중량 2톤(1969kg)에 달하는 거구의 SUV 임을 감안할 때 믿기 힘든 가속감이다.
주행모드는 에코, 컴포트, 오프로드, 다이내믹 4개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엔진의 최고출력은 235마력, 최대토크는 48.9kg.m이다. 안전최고속도는 230k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7.5초에 도달한다. 연비는 13.3km/ℓ.
#안락하고 럭셔리한 주행감성
크로스컨트리는 이전보다 편평비 높은 타이어(일반 235/55 R18, 프로 235/50 R19)를 사용했다. 여기에 스프링과 완충기의 탬핑 컨디션을 조정한 투어링 섀시로 오프로드 승차감을 향상시켰다. 핸들링보다는 정숙성과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세팅이다. 대신 앞뒤 윤거를 넓혀 코너링 시 좌우의 하중이동과 롤링을 최소화했다.
실제로 볼보를 운전하다보면 독일 스포츠 세단들의 특징인 정교한 핸들링과 폭발적인 주행능력보다는, 안락하면서도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감성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주행감성은 볼보를 럭셔리 패밀리카에 적합한 브랜드로 인식시키고 있다.
#길고 낮은 차체에서 오는 안정감
크로스컨트리는 일반도로나 험로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주행능력을 갖췄다. 반듯한 도로를 내달리다가도, 눈 쌓인 미끄러운 길이나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만나도 두렵지 않다. 볼보의 상시 사륜구동(AWD)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이미 실력을 검증받았다.
이 차는 오프로드와 언덕길 주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경사로감속주행장치(HDC)를 적용했다. 1단 또는 후진 기어 상태에서 가속과 브레이킹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시스템으로 최고속도를 전진 10km/h, 후진 7km/h로 유지한다. 이는 거칠고 미끄러운 내리막길의 사고와 눈길, 주차장 경사로 등에서 차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
차체는 전장 4940mm, 전폭 1880mm, 전고 1545mm, 휠베이스 2941mm로 최근 출시한 현대차의 신형 싼타페(4770mm, 1890mm, 1680mm, 2765mm)와 비교할 때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싼타페와 전폭은 거의 같지만 전장은 17cm, 휠베이스는 17.6cm나 길다. 반면 전고는 14.5cm나 낮다. 이런 길고 낮은 차체는 SUV의 최대 단점인 높은 무게중심에서 오는 롤링과 뒤뚱거림을 차단한다. 실제로 크로스컨트리는 어지간한 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밖으로 밀리지 않고 세단 수준의 안정적인 거동 실력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SUV와 비교하기 힘든 크로스컨트리만의 장점이다.
#반 자율주행 기능 수준급
크로스컨트리의 특징 중 하나는 반 자율주행 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2를 기본 장착했다는 것이다. 운전자가 조향장치의 도움을 받아 차선을 유지하며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기술로, 완전 자율주행의 중간단계라고 보면 된다. 이런 기능은 운전자의 피도를 줄여주는데, 장거리 주행에서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파일럿 어시스트2는 실제 주행에서 아주 유용하다. 차가 스스로 가속과 제동을 조절하며 앞 차와의 간격, 속도, 차선을 유지한다. 특히 기존 차선유지기능(LKA)은 스티어링 휠에 가하던 힘이 충분하지 못해 곡선도로에서 조향이 원활하지 못했으나, 파일럿 어시스트2는 기능을 보강해 더욱 강하게 핸들링하며 차선을 유지했다.
다만 급한 곡선도로를 고속으로 달릴 때는 차체가 바깥쪽으로 조금씩 밀려나가며 순간순간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경우를 발견했다. 크고 무거운 차체를 고속에서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흉내 내기 힘든 볼보만의 안전철학
크로스컨트리의 수많은 안전사양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도로이탈보호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차가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당할 경우 탑승자의 흉추와 요추 부상을 막아준다.
차량이 급제동이나 긴급 회피 같은 긴박한 상황에 직면하면 X-Y-Z 축 방향의 가속 신호가 이를 감지해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순간 안전벨트에 압력을 가해 탑승자의 상체를 충돌이 일어나는 반대 방향으로 고정해주는 동시에 좌석에 장착된 에너지 흡수장치가 도로 이탈로 인한 차량 추돌 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해 승객을 보호한다.
볼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티 세이프티 기술도 업그레이드됐다. 기존 앞차와 보행자, 자전거에 이어 ‘큰 동물 감지 기술’과 ‘교차로 추돌방지 시스템’을 추가했다.
#다양한 편의장치
크로스컨트리에 적용된 파크 어시스트 파일럿 기능은 평행 주차는 물론 직각 주차까지 가능하다. 화면을 통해 평행 및 직각 주차 가능 여부를 알려주고, 스스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 주차한다. 후방 줌인 기능을 갖춘 360도 카메라도 주차를 돕는다.
대부분의 마니아들은 볼보의 가장 큰 매력으로 시트와 오디오를 꼽는다. 특히 이전 볼보에 쓰였던 다인오디오는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카오디오에 만족하기 힘들 정도로 수준 높은 소리를 들려줬다.
볼보는 크로스컨트리에 다인오디오가 아닌 또 다른 명품 오디오를 장착했다. 바로 영국 하이엔드 스피커인 바워스&윌킨스(B&W)다. 고음 재생용 트위터와 방탄조끼에 사용하는 케블라 소재의 19개의 스피커, 1개의 에어 서브우퍼, D앰프는 차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음향을 들려준다. 콘서트홀, 개별무대, 스튜디오의 3가지 모드를 지원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날 지인에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당신에게는 크로스컨트리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조창현 기자 changhyen.cho@thedrive.norcal-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