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고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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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지난해 대규모 예산 삭감 사태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연구개발(R&D) 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정부가 추가 증액을 통해 더욱 많은 예산을 편성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연구비 예산이 크게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예산 대부분이 R&D 비용에 투입되는 출연연 특성상 올해 초부터 이미 각종 연구현장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일부 출연연의 경우 후임 원장 선임조차 제 때 이뤄지지 않는 등 각종 잡음이 이는 중이다.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유성구을)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출연연 연도별 주요사업비 자료에 따르면 25개 출연연 주요사업비 예산안은 총 1조83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000억원이 넘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사업비는 전체 출연연 예산에서 순수 R&D 활동에 투입되는 예산을 뜻한다. 출연연 사업비 규모는 △2021년 1조823억원 △2022년 1조1242억원 △2023년 1조1848억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관련 예산 삭감 기조에 따라 올해 8946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전년 대비 24.5%가량 줄어든 수치다.

25개 출연연 가운데 2023년 대비 주요사업비가 삭감된 곳은 23곳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2023년 1335억원 대비 110억원 줄어든 1225억원만 반영돼 조사 대상 기관 중 가장 많은 연구비 예산이 삭감됐다.

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내년도 예산도 같은 기간 96억원이 줄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도 76억원 삭감됐다, 이밖에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73억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67억원 등 총 23곳의 연구비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출연연 예산 삭감에 대해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제외됨에 따라 관련 예산이 줄어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주요 기술에 치중된 전략연구단 예산을 합치더라도 기존 출연연 예산 규모에는 영향이 없다고 지적한다.

내년도 예산 역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내년 국가 R&D 예산을 29조7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했다. 이는 올해 예산보다 약 3조1000억원(약 11.8%) 늘어난 수치지만, 예산 삭감 논란 이전인 2023년과 비교해서는 예산 규모가 약 1조400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어서 연구현장의 우려는 여전한 상태다.

정부 주장에 따르면 2024년 R&D 예산 편성 과정에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권고 기준상 R&D로 분류하지 않는 대학 일반지원 성격 사업 등의 예산 약 1조8000억원을 비 예산 항목으로 재분류했다. 이를 감안하면 2023년의 실제 R&D 예산은 29조3000억원로 책정돼야 하고, 총액을 놓고 내년도 예산(29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출연연 예산은 (R&D 예산이 삭감되기 전인) 2023년 대비 5.3% 증가했다”며 “앞서 발표한 출연연 활성화 방안 후속 작업으로 출연연과 대학의 상호 협업을 위한 벽 허물기와 관련한 내용을 다음 달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R&D 예산을 놓고 정부와 현장의 불협화음이 지속되자 연구 차질을 우려하는 현장의 볼멘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예산이 깎여 기존 연구를 이어가기 힘들어지자 출연연을 떠나 대학이나 기업체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이어가거나 전공을 바꾸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관계자는 “출연연 예산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 맞다. 현장의 체감도가 그러하다”며 “가장 큰 문제는 주요 전략사업에 치중된 예산 분배로 인해 일부 출연연과 연구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사업을 따내기도 어렵지만, 연구 자체를 지속하는 것도 어려운 곳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편 일부 출연연에서는 원장 후임 인선 절차가 지연되면서 기존 기관장들의 임기가 자동 연장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예산 문제에 후임 인선 문제 등 각종 문제가 겹치면서 출연연 현장의 부하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후임 원장 선임이 지연되고 있는 출연연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다. 과기정보원장의 경우 3월 임기가 만료됐지만 180일 이상 임기를 이어가고 있고, 한의연 원장 임기도 160일 이상이 지났다.

생명연을 제외한 다른 기관들 역시 원장 임기 만료가 다섯 달 이상 지난 것으로 파악된다. 생명연 원장의 경우 지난달 16일 임기가 만료됐고 재선임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생명연을 제외한 기관들은 후임 원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국가 R&D 추진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출연연 기관장 선임 프로세서에 대한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훈기 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 남동구을)은 “출연연은 국가 과학기술 혁신과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 함에도, 후임 원장이 제때 임명되지 못해 주요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면서 “관련법이 개정돼 원장 임명 지연 상황을 최소화하고,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인 과학기술 발전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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