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정성화 기자]  #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 마련에 나선 30대 직장인 예비신랑 A씨는 최근 은행들이 잇따라 대출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이 커졌다. 서울시내 전세매물이 많지 않고 전셋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대출을 받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불안감만 커진 탓이다. A씨는 “정부의 정책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했는데 대출을 막아버리면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며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산 서민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 정말 화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당국이 1800조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개별 금융사의 가계대출을 직접 관리하는 창구지도에 나서면서 신규 대출중단에 나선 은행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만 이번 대출규제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등 투자를 위한 차주 외에도 무주택자, 전세수요자 등 주택 실수요자들에게까지 적용돼 실수요자들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강화 속 대출수요는 넘치나 공급은 줄어 대출금리 상승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어렵게 대출을 받아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금융당국 압박에…가계대출 옥죄기 전방위 확산 양상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시내에 소재한 한 영업점 창구에는 고객들의 대출 문의로 북새통을 이뤘다. 행여 은행들의 잇따른 대출중단 사태의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발길들이 이어진 것이다.

앞서 지난 19일 NH농협은행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맞추라는 압박이 거세지자 8월 24일부터 11월30일까지 신규 부동산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키로 했다. 기존 대출 만기연장을 제외하고 신규, 증액, 재약정 모두 불가능하다. 

우리은행도 분기별로 한도를 두고 취급하던 전세자금대출을 3분기 한도소진을 이유로  9월 말까지 사실상 중단했다. 

SC제일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퍼스트홈론’을 신잔액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한해 일부 운영을 중단했다. 또한 전세대출 상품인 ‘퍼스트전세보증론’의 우대금리 폭도 축소했다.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실질 대출금리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중심으로 시행되는 초강력 가계대출 제한조치 때문에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 보험사 등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전면 차단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저축은행중앙회에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소득 이내로 운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저축은행업계는 은행권에 이어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소득 이내로 제한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은행권이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축소하기로 한 마당에 저축은행도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의 요구사항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판.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판. [사진=연합뉴스]

◇“서민들 길거리로 내몬다”…무차별적 규제 조치에 비판 여론 커져

문제는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당국의 규제가 투기수요와 실수요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정부를 향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정부 말만 믿고 생애 첫 주택 구입시기를 계속 미루다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주택 마련은 포기했다”며 “전셋값도 미쳐 날뛰는 마당에 대출까지 틀어 막으면 세입자들은 길거리로 나가 앉으라는 소리냐”고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은 “정부의 다주택자가 아닌 1주택자와 무주택자 보호 약속을 믿었는데 전세자금대출까지 막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한 청원인은 지난 19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리스크(위험)와 기회를 판단해 운영할 자유가 있다”며 과도한 대출 규제 철회를 요구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투기적 대출만 억제하겠다고 말하지만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에서 밀려난 실수요자들이 2금융권에서도 대출 거절을 당하면 결국 사채시장에 손 내밀 수 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획일적 대출 규제보다 시중은행의 연체율 관리 등을 통해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나아가 집값과 전셋값 폭등속에서 당장 서민들은 길거리로 내몰았다는 비판에도 직면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1558만원을 기록해 전월(4억9834만원)보다 1억1724만원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2017년 12월 4억3736만원을 기록한 이후 올해 6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4억원 대를 유지해왔지만 지난달 급등새를 보였다.

대출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인상하거나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도 서서히 올려왔다. 그러다 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대출 옥죄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수요를 조절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높은 가운데 대출금리의 인상속도가 가팔라질수록 대출이자 상환에 따른 소비위축 등 경기침체도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가 높으면 가구의 원리금상환 부담이 커지는 게 당연한 이치”라면서 “여기에 금리상승으로 이자비용이 높아지면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소비여력이 떨어지므로 경기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실수요자 중심으로 불안감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재빨리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설명자료를 통해 “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취급 중단 조치는 당초 목표치를 크게 초과한 농협은행의 계획 준수를 위해 취한 조치”라면서 “가계대출 취급 여력이 충분한 여타 금융회사들에게까지 대출 취급 중단이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위는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의 중단의 경우 자체적 리스크 관리 기준에 따라 일부 상품의 공급을 조절한 것”이라면서 “예년에도 종종 있었던 통상적 리스크관리 노력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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