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지하주차장서 전기차가 충전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지하주차장서 전기차가 충전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서울시가 지난달 제안한 ‘충전율 90%를 초과한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 제한’ 대책이 사실상 무산됐다. 일각에선 현실성을 전혀 따지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 정책이라며, 추후 실용성 높은 구체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90% 이하까지만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정한 전기차에 ‘공식 인증서’를 발급하고, 이 인증서를 부착한 전기차에 한해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용하도록 한 ‘90% 충전율 인증제’를 실제로 추진하지는 않기로 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초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전기차 포비아’ 확산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이번 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각 단지에 권고할 방침이었다.

이후 일부 전기차 제조사와 전기차 유저 등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현대차‧기아 측은 서울시의 이같은 대책이 발표된 즉시 지난달 20일 배터리 충전량(SoC, State of Charge)과 화재 발생 간에 관계가 없음을 명확히 밝히며, 100% 완충해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차‧기아는 설명자료를 통해 다른 가전제품의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용 배터리는 100%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돼 있으며,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배터리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첨단 BMS(배터리관리시스템)가 이를 차단하고 제어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배터리 충전량에 의해 배터리 내부의 물리적 단락이나 쇼트 발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선 현대차‧기아는 안전성이 검증된 범위 내에서 배터리 충전 용량이 산정된다고 밝혔다. 즉 충전량 100%를 기준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고 관리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소비자가 완충을 하더라도 전기차 배터리에는 추가 충전 가능 용량이 존재하며, 운전자가 수치상으로 볼 수 있는 충전량은 총 3개의 마진이 반영된 결과라고 공개했다.

배터리 제조사에서 설정하는 마진이 반영되며, 자동차 제조사 역시 일부 사용 가능 용량을 마진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일반적으로 내비게이션 화면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충전량 수치는 배터리 셀 제조사와 자동차 제조사가 각각 설정한 마진을 제외한 상태로 안내된다.

여장권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 예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장권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 예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현대차‧기아는 배터리 화재 발생 원인은 충전량과 관계가 없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배터리 충전량이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배터리 내부의 물리적 단락이나 쇼트 발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배터리 화재는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돌 등에 의해 내부에서 물리적 단락 발생 시, 양-음극 간 높은 전류가 흐르고 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화학 물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산소 및 가연성 부산물 등으로 인해 발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충전량과는 무관하는 것이 현대차‧기아의 설명이다.

이외의 자동차 업계서도 충전량을 제한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 결함이 없도록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하고 BMS를 통해 사전 오류를 진단해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충전 깊이(충전율)와 화재는 당연히 관련이 있지만, 지배적인 원인은 아니다”며 “100% 충전이라는 게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배터리 수명”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물론 충전을 이보다 더하면 위험할 순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충전은 배터리 셀 제조사나 자동차업체 차원에서 BMS 등으로 이미 차단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소유자들 역시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는 혐오물이 됐다. 인증서 대책 덕분에, 충전율이 확인되지 않은 전기차들은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며 “국민신문고에 지속적인 민원을 넣는 등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지난 6일 종합대책 발표에서 ‘충전율 제한’과 관련한 조치는 모두 제외했다. 행안부는 최근 열린 전국 지차체 회의에서 각 대책 사이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측은 “시민의 불안을 줄이기 위한 권고 사항이었을 뿐”이라며 “전문가 의견 등을 추가로 검토해 최종 대책을 10월께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엇갈리는 주장에 혼란스러워하던 소비자들은 전기차 회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지난 8월 1일 인천 전기차 화재 발생 직후 ‘전기차 화재 관련 소비자반응 추적조사’를 통해 매주 600명~1000명의 자동차 소비자를 대상을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5주차에서 전기차 보유자는 ‘완충 문제없다’에 대해 67%가, ‘월 1회 완충 권장’에 대해 43%가 ‘믿는다’고 답변했다. 일주일 전인 4차 조사에 비해 각각 10%p 12%p 상승한 것으로, 전기차 보유자의 의견이 ‘완전 충전 문제없다’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이제 20년이 채 되지 못했고, 아직 개발 단계일 뿐, 화재가 큰 문제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화재의 원인도 확실치 않다”며 “내로라하는 전문기관조차 서로 다른 주장을 툭툭 던지고 있는데, 전기차 제작사, 배터리 제조사, 정부, 전문가 모두 조금은 더 진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경험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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