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이루겠다는 거대한 비전 아래 다양한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원하고 신(新)성장 분야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R&D 정책이 방향성을 잃었다. 관련 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 기술·산업 인프라를 확충, 글로벌 시장 공략과 새로운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을 비롯해 기관 운용에 필요한 운영비 지원 규모마저 크게 줄이는 등 현장 안팎의 불협화음이 이어지며 기술적 성장은커녕 생태계 보존조차 어려운 형국으로 치닫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주요 연구개발 예산의 집행 현황과 실제 사례를 통해 국가 R&D 방향성의 잘못된 지점을 톺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래픽=고선호 기자]
[그래픽=고선호 기자]

[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챗(Chat)GPT’ 등장으로 문을 연 ‘대 AI(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춰 관련 기술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실제 투입되는 주요 연구개발 예산이 크게 감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경쟁에 필수적인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은 물론, 기술의 산업화 적용을 위한 융합연구에 필요한 재원 등 전반적인 연구 인프라 지원 규모를 줄이면서 자칫 생태계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올해 책정된 ICT R&D분야별 세부사업 중 인공지능분야 13개 사업에 대한 예산은 총 2199억61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12.13%(303억5400만원)가량 감액됐다.

예산이 감액된 주요 사업항목을 살펴보면 △사람중신인공지능핵심원천기술개발 △인공지능챌린지선도기술개발 △한국형언어모델기술개발 △인공지능산업융향기술개발 △AI정밀의료솔루션 △디지털전환 K-SW기술개발 등의 예산이 작년보다 적게 배분됐다.

인공지능분야 사업 예산 총액은 지난해 2503억1500만원에서 올해 2199억6100만원으로 줄었으며, 자율주행과 SW분야를 제외한 순수 AI R&D 분야에서만 마이너스 128억2400만원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으로 예산이 대거 삭감됐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 원천 기술 및 AI 제품‧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유망 신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된 ‘인공지능챌린지선도기술개발’과 글로벌 기업들 다국어 처리기술의 대형화 전략에 맞서 추진된 ‘한국어대형언어모델기술개발’, 인공지능 활용 제품·서비스 연구개발 지원으로 다양한 분야 인공지능 전문기업을 육성해 AI+X R&D 활성화 및 초기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인공지능산업융합기술개발’ 등 관련 산업 기반 및 생태계 조성 관련 예산이 대거 삭감되며 학계와 전문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는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 8월 후보자 당시 “AI, 첨단바이오 등 R&D는 시급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예년과 같은 예타 제도는 맞지 않다”고 지적한 것과도 상반된 결과다.

당시 유 장관은 “올해 예산이 늘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며 “추가 반영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각계 전문가들과 현장 연구자들과 적극 소통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R&D 예산이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예산 증액 및 현실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사진=과기정통부]

정부의 중점 R&D 추진분야인 AI반도체 분야도 예산 감액을 면치 못했다.

인공지능 반도체 혁신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 예산은 1년 만에 90억원이 줄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인공지능반도체 응용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사업 예산도 같은 기간 1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75% 감액됐다.

그밖에 주요 사업에 대해서도 추진단 운영 예산이 삭감되며 속도감 있고 효율적인 기술개발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관련 기술의 내재화와 융합·발전을 통한 활용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기반 조성이나 연구 생태계 육성책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이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인공지능 등 차세대 연구분야에서 실질적인 가치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원천기술 등 별도의 기술들이 필요하다”며 “그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 등은 아직 부족한 거 같다. 초거대AI 등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예산 책정에 대한 개선과 연구개발 기반 육성 및 연구인력 공급체계 확충을 위해서라도 균형적 예산 재편이 시급하다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4년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에서도 AI분야 R&D 예산의 균형과 효율적 운용에 대한 필요성이 지적됐다.

입법조사처는 과기정통부 AI R&D 예산은 차세대 AI에 대한 투자와 AI 반도체 투자 등 전 분야에 대한 고른 예산 투입이 이뤄져야 하지만 연구개발 및 기술 지원 대비 반도체 부문에 대한 치우친 지원이 이뤄지면서 기술적 성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반도체뿐 아니라 다양한 AI 생태계 요소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특히 AI 서비스 활용 사례를 확대할 수 있는 AI R&D 예산 편성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우수한 AI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조인철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서구갑)은 “지난해 정부의 대규모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현장에 부작용도 많이 늘고 있다. 생성형 AI 단계까지 오며 우리도 집중 육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년 R&D 예산이 금년 대비 16% 증가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2023년 수준으로 복원된 것에 불과하며 복원 내용도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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