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종로구 주거밀집지역.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정성화 기자] # 30대 대학원생 A씨는 지난해 9월 관악구 봉천동에 소재한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집주인과 1년 기간의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서울시의 한 청년주거안정사업을 이용해 전세대출을 받았는데 최근 대출 연장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연장을 거부당했다. 은행 측은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A씨를 돌려보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에도 문의했지만 서울시 역시 은행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A씨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1년 기간으로 작성된 계약은 별도 계약서 없이 2년 효력이 있는 것인데 집주인 동의가 없다고 대출연장이 거부됐다”며 “정부도 임대차 3법 시행에 따라 묵시적 갱신,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 전세대출 연장시 집주인 동의가 필요치 않다고 지침 내린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전세대출 연장이 안되면 집을 비우는 방법 밖에 없다”며 “저같은 피해를 입는 세입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집주인이 대출 연장을 거부해 세입자들이 대출받는데 어려움 겪는 사례가 늘면서 집주인 확인 절차가 필요치 않다는 지침을 수차례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이용한 ‘서울시 청년 임차보증금 대출’은 서울시가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주택이나 주거용 오피스텔 입주 계약으로 융자를 받아야 할 때 서울시가 추천서를 발급해주고 이자 일부를 대납해주는 사업이다.

대출한도는 임차보증금의 90% 범위 내 최대 7000만원까지다. 대출기간은 임대차계약 기간 내 6개월 이상 2년 이내로 만기일시상환 방식이다. 임대차 연장 시 최장 8년까지도 대출연장이 가능하다.

A씨의 경우 이 제도를 이용해 전세보증금을 대출받아 집주인과 1년 단위로 전세계약을 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새로운 계약의 형태로 보증료 및 전세보증금 증액을 요구했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집주인은 A씨와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고 계약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가 원하면 2년까지 거주할 수 있어 A씨가 1년 계약을 했어도 나머지 1년은 재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한 조건으로 연장된다. 하지만 전세대출은 연장할 수 없었다.

A씨는 해당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 영업점을 거듭 방문했지만 전세대출 연장이 불가하다는 말만 들었다. 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주관하는 서울시에서 집주인과의 연장 계약서를 요구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제는 지난해 임대차 3법 시행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이 확대되면서 집주인의 동의 없이 연장되는 전세계약이 늘었지만 사실상 전세대출을 갱신할려면 사실상 집주인의 동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해 정부도 지난 7월 “법에 따라 집주인 동의 필요 없이 전세계약이 연장되므로 집주인 동의 서류를 받지 말라”고 강제 지침을 내렸다.

A씨가 이용한 서울시 청년 임차보증금 대출사업 공고문에 ‘집주인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공지돼 있다. [사진=서울시 주거포털 홈페이지 캡쳐]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시행한 이후 A씨 같은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청년임차보증금 지원사업의 취지와 다르게 의도치 않게 민원인에게 불편함을 준 부분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사업의 이해당사자인 은행 및 보증기관과 논의해 A씨 같은 사례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 하겠다”고 답변했다.

집주인 동의 없는 전세대출 연장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데는 사실상 전세대출의 복잡한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대출은 세입자가 받지만, 실제 대출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세입자를 거치지 않고 집주인에게 바로 입금된다. 대출금도 집주인에게 돌려받기 때문에 은행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반환채권’을 가지게 된다.

만약 집주인이 대출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은행은 보증기관에게서 대출금을 지급받고 보증기관은 집주인에게서 대출금을 회수한다.

이때 대출보증은 채권양도 또는 질권설정 방식으로 취급되는데 은행이 가지고 있는 채권의 양도나 질권설정은 보증기관이 집주인에게 통지만 해도 효력이 발생한다. 때문에 은행은 채권양도나 질권설정 시 이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리는 절차를 밟아 왔다. 법적 안전장치 마련 차원에서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 온 것이다.

정부는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세입자 보호를 위해 은행들에게 관행적으로 받아온 동의 절차를 받지 말라는지침을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지원하는 전세대출 사업까지 집주인 동의를 요구하면서 일선 현장에서 혼선을 빚고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A씨는 “서울시가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지자체의 주거 안정 사업이 이렇게 모순 투성이인데, 집주인 확인을 요구하면서 세입자들에게 고통 주는 사례는 저 뿐만 아니라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토로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email protected]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