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분양가 규제 개선을 두고 공급 확대와 무주택 실수요자 보호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연합뉴스]
정부가 분양가 규제 개선을 두고 공급 확대와 무주택 실수요자 보호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남석 기자] 정부가 분양가상한제 딜레마에 빠졌다. 민간의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심사제를 손보겠다고 밝혔지만, 무주택자들이 분양가 상승 우려로 반발하면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각종 규제와 집값 폭등으로 분양가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도시정비사업 조합원과 민간 건설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공급을 망설이고 있다”며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분양가 현실화의 필요성이 나오고 있지만, 무주택 서민의 주택 구입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본래 목적이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또 분양 양산, 공급 억제 문제…“현실화 필요”

정부가 건설사와 조합 등 민간 주택 공급자의 불만이 컸던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심사제 개선에 착수했다.

지난 15일 국토교통부는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아파트 공급속도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심사제의 심사 기준을 개선해 분양가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분양가상한제의 경우 지자체마다 인정 항목과 심사 방식 등 분양가 산정 기준이 달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다, 도시주택보증공사(HUG)가 운영하는 고분양가심사제 역시 비교 단지의 분양 시기, 브랜드, 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아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

[자료=직방, 통계청]
[자료=직방, 통계청]

직방에 따르면 지난 2015년 6억4066만원이었던 서울 호당 평균 분양가는 △2016년 6억8923만원 △2017년 7억3316만원 △2018년 8억4514만원 △2019년 8억6301만원으로 꾸준히 상승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민간 공급 단지까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이후 8억4696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지난 16일 기준 7억8034만원까지 내려갔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가 2112만원(2015년 1월)에서 4495만원(2021년 6월)으로 2배 이상 오른 것과 비교된다.

업계에서는 분양가 문제로 약 2만가구 이상의 주택 공급이 연기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1만200가구 규모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철거까지 마쳤지만 분양가 문제로 아직까지 공급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고,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 은평구 역촌동 ‘센트레빌파크프레스티지’ 등의 단지들도 분양이 지연되고 있다.

이렇게 분양가 문제가 민간 주택 공급의 걸림돌로 부각되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국토부는 분양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분양가 산정 과정의 불합리함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전문가들은 심사제도 개선이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특히 고분양가심사제의 경우 단지 규모와 브랜드와 상관없이 비교 단지를 선정하고 일정 범위 내 최근 분양 단지가 없을 경우 10년 전 분양 단지와도 분양가를 비교하던 문제가 개선되면 큰 폭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건설사와 조합 측은 제도 개선을 반기고 있다. 수익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양가 문제가 공급의 억제책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주요 단지들이 주변 단지 매매가의 60% 수준으로 분양가가 책정돼 왔다”며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단지 중 분양이 미뤄진 단지의 대부분은 분양가 문제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정확한 개선책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분양가 현실화가 이뤄질수록 민간 주택 공급은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출 막히는데 분양가도 올린다고?”…무주택자 반발 확산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 기회 확대와 투기수요 억제,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서는 낮은 분양가가 유지돼야 한다”며 분양가 규제 개선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집값이 폭등하고 대출까지 막힌 상황에서 분양가를 올리는 것은 무주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 무주택자의 입장이다.

무주택자로 구성된 시민단체 ‘집값 정상화 시민행동’은 국토부에 보낸 민원을 통해 “분양가가 낮아서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라며 “분양가를 올려 건설사의 이익을 높일 것이 아니라 더 낮게 책정해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두 배 오른 집값을 되돌릴 정책을 내놔도 용서받지 못할 정권이 건설업계 이익을 위해 분양가를 높이겠다는게 말이 되냐”며 “무주택자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보다 더하다”는 청원 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도 개선안은 지자체별로 상이한 분양가 심의 기준을 통일하고, 고분양가심사제의 심사 기준을 세분화해 업계의 사업계획 마련에 지장을 주는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분양가를 올려준다는 비판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하나에 얽혀 있는 관계자들이 많은 만큼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분양가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값이 급격하게 오른데 반해 분양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양가를 현실화 할 경우 그만큼 집값이 더 오를 수도 있다”며 “공급 예정 단지의 요구와 시장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무주택 실수요자 보호라는 명분은 살리고 순차적으로 민간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분양가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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