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LG전자, 그래픽=고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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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대한민국=가전”이라는 글로벌 수식어가 깨지고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막대한 투자와 당국 차원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가파른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가전기업들에 추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기업들이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백색가전 및 생활가전 분야에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로봇청소기와 같은 소형 생활가전 분야에선 이미 중국에게 우위를 내준 상태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차세대 기술력에서마저 중국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예상치를 벗어나면서 향후 시장구도에도 균열이 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독일 현지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 기간 동안 139개국에서 2000여 개의 기업들이 참가한 가운데 중국은 하이센스, TCL, 하이얼, 메이디, 아너 등을 포함해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1300여 개 기업이 참가하면서 가장 큰 규모로 전시장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를 무기로 해 점유율을 확대했던 TV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냉장고,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계 주목을 받았다.

최근 글로벌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협하고 있는 TCL은 전시장 입구부터 163인치의 대형 마이크로 LED 자이언트(GIANT) TV를 전시했다.

IFA 공식 후원사인 TCL은 세계 최대 크기라고 자랑한 115인치 ‘퀀텀닷(QD)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내세웠다. 중국 가전 업체 하이센스 역시 롤러블 TV를 비롯해 안경 없이도 구현되는 3D TV 등을 내놓았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하이얼은 차세대 기술이 집약된 제품을 선보이며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앞서 하이얼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후버, 일본 산요, 이탈리아 캔디 등 크고 작은 M&A(인수합병)를 통해 외연 확장에 나선 바 있다. 이후 AI 가전의 핵심인 스마트홈 기술 등을 강화해 프리미엄 가전 시장 공략을 위한 사전작업에 나서고 있다.

세간의 평가는 중국 가전기업들이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우리 가전 업계를 긴장시킬 만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아직까지 주요 인기제품에서의 약세는 털어내지 못했지만, 가공할 만한 속도로 성장 중인 고도화된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투자를 통해 근시일 내로 톱티어 자리를 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 수장들도 중국의 괄목할 만한 기술적 성장에 주목하며 초격차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IFA 개막 첫날 TCL과 하이센스를 관람한 뒤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국 가전 업체들이 질적인 면에서 굉장히 많이 따라왔다. 우리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 기업)은 깎아내릴 대상이 아니고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또한 중국 기업들의 거센 공세에 대해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면 앞설 것”이라며 “기술이 성숙되면 가격 때문에 따라잡히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을 계속 출시해 삼성의 입지를 유지하겠다. 온디바이스 AI 결합 등으로 초개인화된 기기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에코백스]
[사진=에코백스]

국내 가전업계가 이토록 긴장한 이유는 중국 가전의 비약적 성장이 추격으로 그친 것이 아닌, 실제 일부 분야에선 우리 기업들을 압도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로봇청소기 분야에선 사실상 왕좌를 내준 상태다.

로봇청소기의 기술 특성상 AI과 자율주행을 비롯해 고정밀 내비게이션, 매핑(지도 제작) 등의 각종 첨단 기술이 집약돼야 하는데, 수년 전 세간의 예상과 전망을 깨고 장기간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끌어가는 중이다.

국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 로보락은 이젠 스테디셀러를 넘어 글로벌스탠다드로 자리 잡았다.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 1위이기도 한 로보락은 올 상반기 국내 점유율을 46.5%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에만 14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매출이 2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올해 4월 출시한 일체형 로봇청소기 플래그십 모델 ‘로보락 S8 맥스V 울트라’ 등 주요 신제품에서도 강세가 이어지며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 가전은 저가 제품’이라는 인식은 이젠 옛말이 됐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로보락은 가격보다는 기술력과 성능으로 승부하고 있다. 실제로 상반기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을 제품 가격대 150만원 이상으로 좁히면 로보락의 점유율은 65.7%로 더 높았다.

다만 미래 가전분야의 필수 조건인 확장성과 안전성에서는 큰 점수를 얻지 못한 만큼 이점을 겨냥한 국내 기업들의 공략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막강한 가격경쟁력과 다년간 쌓아온 기술력은 물론 국내 기업들에게 한동안은 거대한 벽처럼 여겨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프리미엄 시장이라는 특성상 결국에는 제품 가격에 부합하는 서비스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삼성과 LG로 대변되는 우리 가전 브랜드의 일발 역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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