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우리 게임들엔 저마다 고유의 짙은 색이 담긴 ‘낭만’이라는 게 있었다.

친구들과 PC방에 들러 게임을 하며 유대를 키우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또 다른 꿈을 키워가는 그야말로 현실과 또 다른 판타지 세상이었다.

좋은 게임이 다음 세대 게임의 출시를 이끄는 발판이 돼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게임들이 세상에 나왔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유저들과 사람들이 게임으로 빠져들게 됐고, ‘돈 안 되는 시장’이었던 게임은 어느덧 ‘제일 돈 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발 빠른 혁신과 진화, 새롭고 고도화된 콘텐츠는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게임강국으로 이끌었고, 당시 최전성기 우리 게임업계는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다 게임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들 무렵 ‘확률형’ 방식의 과금형 아이템이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확률성 콘텐츠는 리니지에서 캐릭터 스테이터스(능력치)를 무작위로 설정하는 시스템이었다. 이후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곳에 적용되기 시작하더니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전에 없던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초기만 하더라도 ‘10개 중 한 개는 확정’, ‘구매 시 추가 지급 확률’ 등 유저 친화적인 방식으로 운영됐지만, 점차 그 확률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리대로, 이어 한 자릿수까지 줄어들더니 나중에 가선 그 벽마저도 허물어지며 0.001%라는 경악스러운 수치까지 유저들에게 들이밀기 시작했다.

이는 곧 ‘천장(天障)’이라는 용어로 진화됐다. 천장은 말 그대로 건물 내부 해당 실의 최고 높이를 가로막고 있는 구조물을 뜻한다. 이를 확률형 아이템에 대입하면 핵심이 되는 어떠한 아이템을 얻기 위한 최소 기댓값으로 이해하면 된다.

쉽게 말해 1회 구입에 1만원이 소요되는 확률형 아이템 A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1%라면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해 대략 100번의 구입이 핋요하고 이를 과금 비용으로 환산하면 100만원이 천장이 된다. 이러한 천장까지 구매를 1회 시도하는 것을 ‘트럭’이라는 은어로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아이템이 MMORPG에서 최고급 아이템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비 형태로 사용되는 주요 재료 아이템이라면 구입 규모는 더욱 커진다.

위에 정리한 내용은 1%라는 매우 희망적인 확률로 가정했기 때문에 현실적 수치인 0.01%를 대입해 계산해보면 한 게임을 대표하는 최고급 아이템의 경우 소요 비용은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천만원은 물론 수억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A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아이템을 구매하면 이를 다시 특정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마치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이 떠오르는 괴이한 방식의 과금 아이템까지 등장하며 유저들을 기망·우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게임유저라면 이러한 게임 아이템 구입 방식이 매우 익숙할 것이다.

바람에나라와 메이플스토리, 크레이지아케이드,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피파온라인 시리즈, 마비노기 등 이름만 들어도 웅장한 대표 게임들을 수없이 만들어낸 기업, 바로 넥슨이 그 주인공이다.

수많은 유저들이 넥슨을 ‘돈슨’이라 헐뜯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수익 창출의 방식이 범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식들이기 때문이다.

게임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회사가 더욱 커지고 사업이 확장될수록 이윤을 쫓을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입장도 십분 이해가 된다. 또 게임에 더 깊이 빠지고 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과금이 주는 혜택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넥슨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무려 2010년 5월을 기점으로 15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메이플스토리 안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임의 조정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드러났다. 그동안 불법적인 행태로 벌어들인 수익은 55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모두 공정위 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이에 공정위는 넥슨에 시정명령과 116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당시 넥슨은 이마저도 불복했다. 도리어 넥슨코리아는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접수하며 반격에 나섰다.

사태가 비화하자 6000명에 달하는 유저들이 넥슨에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피해를 입은 유저들을 상대로 ‘게임 캐시’를 지급하란 결정이 내려졌다. 방식과 배경에 대한 이유는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현물, 즉 돈을 날린 피해에 대한 배상을 다른 재화로 주라는 결정이 내려진 이례적 상황이다.

유저들이 바랬던 것은 큰 게 아니다. 확률 아이템을 없애란 것도 아니었고, 이를 더욱 유리하게 조정해 달라는 얘기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쓴 돈 만큼 효용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를 외면하고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넥슨, 유저 중심이 아닌 게임사에 유리한 배상 결정을 내린 소보원 등 정상적 이해라는 보편적 가치가 사라진 절차 속 유저들은 또 한번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넥슨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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