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염보라 기자] 몇 해 전 일이다. 

금융당국 수장의 말 한 마디에 모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포기가 기정사실화된 어느 날, 한 저녁 자리에 호출을 받았다.

해당 금융지주의 주요 계열사 임원이 먼저 자리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한때 모셨던 ‘선배’를 후임 회장으로 밀기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려 한다는 은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선배’는 퇴직자였지만, 여전히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운 모습이었다.

이 금융지주에는 크게 두 개의 파벌이 존재했고, 이들은 그 중 하나의 파벌에 서있는 인사였다.

결과적으로 그 ‘선배’는 후임 회장 경쟁에서 밀렸고, 선배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충성을 맹세했던 ‘후배’는 자연스럽게 퇴직 절차를 밟았다.

“다른 분이 회장이 되면 저도 끝입니다.” 

그의 능력이 거기까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또 다른 금융지주에는 한때 ‘상왕(上王)’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지주 회장 시절 스스로 상임고문 제도를 만들고, 퇴임 후 상임고문을 자처했다. 

후임 회장은 그의 오른팔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회장 위의 회장, 이른바 ‘상왕’ 의혹을 받은 이유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은행권 인사는 “자신의 사람을 후임으로 앉혀놓고 상왕으로서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은행에서는 ‘파벌’ 혹은 ‘라인’ 문화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2024년 8월 현재, 모 은행의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에선 ‘내부통제 허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은행 종사자들은 단순히 내부통제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위 말하는 ‘라인’을 잘 타야 승진할 수 있는 환경, 그렇다 보니 ‘아니오’를 외칠 수 없는 조직문화가 결국 이 ‘사달’이 났다는 진단이다.

비단 이 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채용 플랫폼을 열어 각 은행에 대한 퇴직자들의 평가를 보면 ‘인맥과 라인이 중요시되는 문화‘  ‘군대식 상명하복‘ 등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대의 변화 속에 없어졌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은행들의 오랜 악습이 여전히 뿌리 뽑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이다.

환부를 빨리 도려낼 수록 새 살은 빨리 돋는 법이다. 

자가성찰을 통해 악폐를 없애고, 새해 신년사로 모든 최고경영자(CEO)들이 외친 ‘국민 신뢰 회복’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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