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하필이면 왜 지금···.”

주요 국내 완성차 관계자의 탄식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일시적인 수요 정체 현상을 뜻하는 캐즘 현상이 전기차를 덮친 지 수개월째, 그래도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얻겠다며 신차 출시가 줄을 잇던 8월 초,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가 터졌다.

지나가는 뉴스로 넘어가기엔 피해가 너무 컸다. 그리고 무서웠다. 충전 중도 아닌, 단지 주차해 둔 전기차 내부에서 불이 붙었다. 그 불은 삽시간에 옆 차들로 옮겨 붙어 나란히 서있던 70대를 태웠다. “사람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끔찍한 가정이지만, 차에는 늘 사람이 탄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건 운이 좋았을 뿐이다.

공포는 어느새 혐오로 변질됐다. 사고가 알려진 몇 주 사이 공용 주차장엔 전기차를 못 들어오게 막거나, 아파트 주민들끼리 전기차 주차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 전기차 차주들은 “우리가 범죄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 달 여 시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상황은 진행 중이다. 완성차사들은 앞다퉈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지만, 국토부의 권고에 의한 움직임일 뿐이다. 몇 업체는 전기차 무료 점검도 시행 중이나, 한번 시작된 불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 정치, 학계와 업계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모여 회의를 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방안은 요원하다. 국내에서 전기차를 제조·판매하는 모든 브랜드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등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전기차 제조사 공개 의무화’와 정부의 안전기준에 부합한 전기차 배터리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배터리 인증제’ 조기 시행 등이 나온 정도다.

그렇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 없다. 내연기관차로 돌아갈 수도, 하이브리드로 연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론은 또다시 ‘전기차 전환’이다. 이미 글로벌 환경 기조가 탄소중립으로 정해진 이상 한국 역시 그 길을 가야 한다.

결국 남은 건 ‘안전’이다. 안심하고 달리고 충전할 만한 안전한 전기차를 개발하는 일, 그리고 모든 개발 정보를 투명하게 소비자에 공개하는 일만이 남았다. 현대차‧기아는 국산차 중 선제적으로 공개자료와 미디어 행사를 통해 안전한 전기차 개발 노하우와 배터리 정보관리시스템(BMS) 등에 대해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이 전엔 내가 탄 차의 부품 제조사 정도는 ‘관례상 비공개’라며 기업에 묻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이제는 브랜드가 직접 나서 제조사는 물론 개발 과정과 자세한 정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됐다. 전기차 화재 사고 때문이기는 하나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며, 더 나아가 혁신해야 할 과제다.

최근 업계 배터리 분야 관계자가 미디어 행사에서 남긴 기억나는 한 마디로 마무리를 대신 한다. “휴대전화기도 과열되어 불이 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유선전화로 돌아가지 않았듯이, 우리는 안전한 전기차를 만들어 결국 ‘전기차 전환 시대’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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