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간호계가 가진 문제는 군대의 고질병과 다르지 않다.”

간호계를 취재하면서 머릿속에 박힌 생각이다. 최근 채상병과 얼차려 훈련병의 사망사건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군필자들이 거센 분노를 쏟아내는 모양새다. 일부 군필자들 사이에서는 ‘제2의 임오군란’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군필자들이 이토록 화가 난 이유는 ‘처우’에 있다. 기자가 입대할 당시 훈련소에서 마주한 첫 글귀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었다. 안중근 의사로부터 전해내려 온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기기에는 병사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군필자라면 알고 있다.

그간의 취재를 통해 의료현장 속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나이팅게일 선서에 담긴 ‘희생·봉사·장인’ 정신만 강조될 뿐 처우는 바뀐 게 없다. 실제로 한 간호사는 기자에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에 걸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처우개선을 바라는 마음을 모아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간호법’ 제정을 촉구해 왔다. 간호법은 2005년 제17대 국회에서 처음 대표발의됐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한 차례씩 발의했지만 국회 만료로 폐기됐다. 제20대·21대에서도 같은 이유로 외면당했다.

제22대 국회 들어서도 간호사들의 낙담한 반응은 이어지고 있다. 출범 초기인 5월부터 여야가 각각 당론으로 간호법을 채택했지만 그동안 그랬듯이 의약계의 반발이 거세다. 의료현장에서도 “이번에도 그동안 늘 그랬듯이 반발에 부딪히다가 폐기될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흐름이 간호사들을 나라밖으로 떠미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취재 중 소통한 간호사들, 간호사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 간호사를 주제로 다루는 SNS·유튜브 게시물 등에서 ‘해외취업이 답’이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군 면제를 위해 나라를 뜨듯 말이다.

혹자는 국내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며 간호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 면제를 위해 나라밖을 선택한 이들은 ‘군 면제’ 그 자체. 병역의 의무를 저버리는 불순한 목적이 있지만 간호사들은 기본적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열악한 처우를 버티다 못해 떠밀리듯 ‘탈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렇게 해외로 뜨는 간호사들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떠한 ‘정신’을 갖추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동기부여가 보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간호사들에게 그 ‘정신’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군대를 향한 군필자들의 태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군필자들이 미필자를 비판하거나 낮잡아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유’ 사태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에 못지않게 ‘군대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맞다’는 목소리도 커져가는 분위기다.

같은 이유로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탈임상은 지능순’이라는 자조 섞인 ‘밈’이 유행하고 있다. 간호사들 스스로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게 멍청한 꼴이라며 열악한 처우를 꼬집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신규 간호사 절반 이상이 1년 이내 사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에만 의존해 어떠한 ‘정신’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간호법으로 처우개선의 초석이 ‘보이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여야가 당론으로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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