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사진=안경선 기자]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사진=안경선 기자]

[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저출생 대응 과정에서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일률적인 기준을 요구하며 규제 중심으로 접근할 경우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연구위원은 지난 2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기업들을 상대로 가장 관심있게 보는 주제의 설문조사에서 1, 2위로 미국 대선, AI 관련 이슈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면서도 “저출생 및 고령화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범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먼저 저출생 현상에 대해 “글로벌 차원에서 관찰되는 인류 발전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기대수명 연장, 인적 자본 축적, 기술 혁신 등의 요인과 맞물러 출산율 저하와 소득 증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저출생 문제는 글로벌 트렌드에 국가 특유의 요인이 결합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청년 실업, 소득 정체, 주거비 부담, 경제적 불확실성 증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과밀 인구에 대한 인식, 과도한 경쟁 지향성, 획일화된 성공 기준, 다양성 부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특히 한국 특유의 직장과 가정 간 불균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잦은 야근 등 장시간 근로 문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경직된 조직 문화 등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 저출생 정책 실패···중상층에게만 효과적

한국의 저출생 정책에 대한 질문에 김 연구위원은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이 부족해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충분히 경감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기존 정책들은 주로 출산 경계에 있는 중상층 임금 근로자에게 효과적이었다. 특히 미혼층의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위원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고 일·가정 양립, 주거 안정, 교육비 부담 경감 등 저출생의 근본 원인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면서 “향후 저출생 정책은 더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결혼부터 육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기업들이 직원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 재계가 출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됐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존 저출생 대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들은 저출생 문제를 지속 가능성과 연결 지어 인식하고 출산 및 육아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근로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정부 정책은 무용한데 예를 들어, GTX 확장으로 통근 시간이 단축되더라도 이를 야근하기 좋은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상사가 있다면 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과 더불어 기업 내 근로 문화의 개선이 동반돼야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안경선 기자]
[사진=안경선 기자]

다만 김 연구위원은 “저출생 대응 과정에서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일률적인 기준을 요구하며 규제 중심으로 접근할 경우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업들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출산 관련 성과가 입증된 기업에는 금리 인하, 정책 자금 지원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가족 친화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장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근로 문화 전환 필요···기업 참여 유도 정책도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규제로 접근하게 되면 기업들은 이를 피하기 위한 비용을 들일 수 밖에 없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지속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노력에 대한 질문에 인공지능(AI)·고령층 활용·이민 등을 거론하며 “컨트롤 타워가 있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반전시킬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제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 것만으로 한걸음 나아간 셈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김 연구위원은 먼저 AI에 대해 “IMF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의 약 40%, 선진국의 경우 60%가 AI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중 약 절반의 일자리가 AI 활용으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의 활용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10~15%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매일 이메일 관리, 데이터 입력, 보고서 출력 등 단순·반복 업무에 평균 3.58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이러한 루틴 업무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하고 인력들이 본질적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할 경우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은 AI 시대에 맞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 개발, 기존 인력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 실시, AI를 생산설비에 접목해 제품 생산 과정 전반을 제어하는 공정혁신 추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층 활용안에 대해서는 “고령층에 편입되는 인구는 과거와 달리 고학력·고숙련 비중이 높아 이들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와 노동생산성 저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고령층 노동력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임금 수준에 부합하는 생산성 유지 방안 마련, 젊은 층과 경합하지 않는 일자리 창출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고령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효과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고령층 인력 활용을 위한 인적자원 관리체계 구축 및 다양하고 유연한 근무형태 개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민에 대해서는 “앞으로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산업에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것은 기업들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현재 해외 전문인력에 대한 국내 이주 여건은 주요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외국인 우수인재가 국내에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주 여건 개선,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외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한 국내 수요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고소득자와 첨단산업 분야 종사자를 위한 특별 비자체계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안경선 기자]
[사진=안경선 기자]

◇지방소멸, 산업 경쟁력 고려···다각적 신 전략 수립

그는 또 지역소멸과 국내 주력산업 경쟁력에 대해 “저출생·고령화 현상은 인구 유출로 인한 지방 도시의 쇠퇴와 이에 따른 국토 불균형 발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또 젊은 인재의 감소로 인한 주력산업의 혁신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 지역 소멸, 그리고 주력산업 경쟁력 강화 문제는 상호 연관된 복합적 과제로 통합적 접근을 통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인구 적응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1인당 생산성 향상, 노동투입 증대 방안 수립, 수도권 집중 해소를 통한 균형 발전, 새로운 경제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내수시장 확대 등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각적 접근을 포괄하는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의 수립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김 연구위원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방소멸 문제에 대해 “결국 좋은 기업이 입주하는 것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며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것 만으로는 극적인 효과를 내기는 힘든 상황이다. 양질의 일자리와 지역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이 입지를 정할 때 꼭 한국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연구위원은 “경제를 연구해 오면서 지속적으로 수출 품목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를 보면 20년 전과 지금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발견한다”면서 “국내외 연구인력들과 얘기를 해보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만큼 미래 산업이나 수출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잘하고 있는 산업들을 꾸준히 키워서 발전시키고 서비스업은 기존 산업들이 성장하면서 잘 할 수 있기에 제조업을 재편하기 보다 육성 및 맞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email protected]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