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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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SK·두산 등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업황 부진 등을 이유로 지배구조 및 사업 개편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투자자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고 있어 기업들로서는 당황스러운 눈치다. 

5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SK E&S와의 합병을 결의한 가운데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관련해 반대의견을 내면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SK그룹 측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대해 개의치 않고 합병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전량 청구권 행사에 나설 경우 비용 부담이 급증하게 돼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는 총 9명의 위원 중 단 1명의 차이로 반대가 결정됐을 만큼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수책위 내부 회의에선 막판까지 SK이노베이션과 SK E&S간 합병 비율 산정 과정, 대주주 일가에게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이 결정 된 것을 두고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 SK, 주총 문턱 넘었지만 국민연금 변수 여전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재까지는 큰 변수가 없는 한 합병을 유력하게 내다보고 있지만 만의 하나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설 경우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지분 6.2%를 들고 있는 2대 주주로 전량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이것만으로도 6917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정한 상한선 8000억원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4일 종가 기준 10만7200원에 머물러 있어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11만1943원에 밑돌고 있는 만큼 전량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면서다.

이렇게 될 경우 SK그룹의 당초 추진 목적인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주식 매입으로 인해 상당히 희석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두산그룹의 경우 국민연금 입김은 더욱 심각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이미 금융감독원의 압박에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계획에서 한발짝 물러선 상태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 재정건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두산밥캣을 분리해 두산로보틱스 계열사로 편입시키는 방안으로 선회했다.

두산 측은 이번 개편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차입금 7000억원을 줄이고 비주력 자산 매각 등으로 5000억원 포함해 총 1조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책위는 아직 임시주총 일자 등을 고려해 논의에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위원들은 지난달 초 SK그룹과 함께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안건을 수책위가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콜업’을 통과시켰다.

국민연금은 수책위 위원 3명 이상 안건을 콜업하거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자체 판단하기 곤란하다 결정하면 수책위에서 안건을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수책위 위원으로부터 두산그룹 개편에 대해 부정적 반응이 등장하고 있어 반대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도 SK그룹과 유사한 대주주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리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지분을 각각 6.85%, 7.22%를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전량 행사하면 총 9292억원에 달해 단번에 상한선인 6000억원을 넘겨버려 국민연금이 반대를 표할 경우 파장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그룹 지주사인 두산이 68.19%를 보유하고 있고 두산밥캣도 두산에너빌리티가 46.08%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의 보유 지분의 힘이 강력한 반면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최대주주 두산의 지분율이 30.39% 수준이고 소액주주 지분도 63.61%에 달하는 만큼 국민연금의 결정이 이번 분할·합병안의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결정에 소액주주(63.61%)의 상당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활동 행보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논란은 여전하다.

국민연금은 최근 들어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주총에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 중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종윤·신동국·남병호 신임 이사를 임명하자 국민연금은 최근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꾸고 비공개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올초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을 두고서도 지속적인 압박으로 결국 최정우 전 회장을 사실상 낙마시키고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도록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국민연금, 주주 목소리 대변···과도한 개입 우려도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 오너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을 대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두산그룹의 경우 먼저 금융당국이 압박에 나서면서 관치 논란을 키운 바 있어 향후 후폭풍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금융감독원은 오는 12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관에서 국민연금 등과 함께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열린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히면서 불씨를 키우고 있다.

이번 열린토론회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주요 기관 투자자인 네덜란드 연기금 APG,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민간 자산운용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업 지배구조 관련 비공개 간담회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당위성을 밝힌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토론회가 정부 차원에서의 방향성을 정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친기업을 표방해온 정권으로서는 주주 가치 제고를 표방하지만 자칫 지나친 경영 개입으로 비쳐질 수 있어 역효과도 거세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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