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이루겠다는 거대한 비전 아래 다양한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원하고 신(新)성장 분야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R&D 정책이 방향성을 잃었다. 관련 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 기술·산업 인프라를 확충, 글로벌 시장 공략과 새로운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을 비롯해 기관 운용에 필요한 운영비 지원 규모마저 크게 줄이는 등 현장 안팎의 불협화음이 이어지며 기술적 성장은커녕 생태계 보존조차 어려운 형국으로 치닫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주요 연구개발 예산의 집행 현황과 실제 사례를 통해 국가 R&D 방향성의 잘못된 지점을 톺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래픽=고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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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정부가 연간 연구개발(R&D) 총 예산을 늘려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 등 선도형 분야를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올해 실제 반영된 R&D 예산이 당초 규모에 못 미치는 등 편성과 적용 단계에서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문별 투자 계획이 아닌 기초연구 비용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투입·배정된 예산 현황과 예산안 간 차이가 올해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은 물론, 항목별 경우도 주요 선도형 사업 위주에 치우치게 배정돼 있어 자칫 연구 생태계의 저성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2024년도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사업 종합시행계획에 따르면 연간 기초연구 총 예산은 2조1288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계획안에 반영된 2조6300억원 대비 5000억원 가량 감액됐다. 2023년 예산이 앞서 계획된 예산안보다 100억원가량 증액 투입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당시 과기정통부 측은 “중점 투자 내용 이외에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초연구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 기초연구 사업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젊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연구기회를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체계가 굳건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장에서 제기된 안정적 연구 수행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계속과제 예산을 증액하는 등 관련 제반 요소를 반영해 전반적으로 단행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 투입 현황과는 대조를 이루는 게 사실이다.

사업별 예산 총계를 놓고 봤을 때는 정부 예산안 중 과학기술분야 연간 총 예산 계획 중 올해 기초연구분야 2078억원 증액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적용된 예산안 규모는 4조6909억4400만원. 작년 예산 규모 대비 6000억원 가까이 축소됐다.

항목별 예산 변동 추이. [그래픽=고선호 기자]
항목별 예산 변동 추이. [그래픽=고선호 기자]

전체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역을 살펴보면 문제가 많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신진연구 사업이 늘었지만 생애 첫 연구와 기본연구는 크게 줄어들어 기반 생태계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항목별 예산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글로벌 리더 육성과 글로벌 매칭 기회 확대를 위한 우수연구 지원 규모는 작년보다 늘었지만, 다양한 연구개발을 통한 차세대 기술의 핵심이 되는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생애 기본연구의 경우 지난해 2524억600만원에서 올해 1194억8000만원으로 1년 만에 1329억2600만원이 삭감됐다.

이공계 전문기술인력 양성 등 향후 기초연구 기반 조성예산도 크게 줄었다. 인재활용확산지원 예산은 지난해 790억1700만원에서 올해 481억4100만원으로 39% 이상 감액됐으며, 연구현장의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실전 문제 해결형 인재양성’ 예산도 같은 기간 70억원 가량 줄었다.

이밖에도 △‘혁신성장선도 고급연구인재성장지원(KIURI)’ -45억원 △‘기후기술인재양성 시범사업’ -14억원 △‘과학비즈시스벨트 산학연계 인력양성’ -8억2000만원 등 이공계 전문기술인력 양성을 제외한 인재 관련 항목 대부분이 삭감을 면치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관계자는 “한 번 손상된 연구 생태계는 회복이 힘들다. 주요 선도사업 외에도 연구개발 저변 확대를 위한 예산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초연구 비용은 관련 인재를 육성하고 새로운 연구를 촉발하는 마중물 역할이다. 단순하게 명목형으로 지원해주는 예산이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예산”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기초분야 및 R&D 부문에 대한 예산안은 발표 과정에서 AI·반도체 부문 R&D 예산 등 분야별로 나눠지지 않고 주요 사업계획이 개별 취합·합산돼 발표하기 때문에 실제 예산 구분 및 투입을 거치면서 편성된 예산 규모와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투입·배정된 예산 현황과 예산안 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으며, 다양한 증액 요인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업 예산이 대거 삭감되며 상승효과를 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 역시 기초연구 예산을 올해 대비 2000억원 수준 증액해 역대 최대로 책정했다는 입장이이다, 그러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을 중점으로 예산이 책정된 만큼 투자 규모 자체가 늘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학계·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황정아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유성구을)은 “국가 총 R&D 예산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023년도 대비 삭감인데, 출연연들은 명목 R&D 예산마저 2023년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국가 출연연은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R&D 예산 삭감의 고통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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