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정부가 간호대 정원을 1000명 증원하기로 발표하자 간호계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장롱면허’ 간호사가 많은 상황 속에서 증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다는 주장이 연이어 나온다.

4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간호대 입학정원을 2만3883명에서 2만4883명으로 1000명 증원키로 했다. 그동안 간호대 입학정원은 2008년 1만1686명에서 2023년 2만2183명으로 약 2배 늘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임상 간호사 수도 같은 기간 10만6881명에서 26만9434명으로 약 2.5배 규모 늘었다.

정부는 증원 이유로 ‘현역 간호사 수 부족’을 꼽았다.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 간호사수는 5.3명으로 OECD 평균인 8.4명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연구’를 통해 간호사의 업무 강도를 현재 80%로 낮추면 2035명까지 간호사 5만6000명이 부족하다고 내다봤다.

간호계에서는 정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최근 10년간 간호인력이 65%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간호사 절반은 1년 내로 병원을 떠나는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연일 배출되는 간호사를 병원 밖으로 밀어내는 열악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간호계에서는 선결과제로 면허가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근무하지 않는 ‘장롱면허’ 간호사들을 지목한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연평균 증가율은 이미 OECD 평균보다 4배 이상 높다. 그러나 면허 간호사 대비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 간호사의 비율은 52.8%에 그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최하위권 수준이다.

이러자 간호사들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다시 한번 조명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2020년 기준 간호사 사직률이 19.7%며, 이후로도 매년 높아지는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사직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5.2%는 간호사 본래 업무범위 이상의 과도한 업무에 지쳐 사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간호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으나 다른 직종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밝힌 A씨는 “대학생 시절 간호사라는 꿈을 안고 실습과정을 거쳐 현직이 됐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열악한 근무환경이었다”면서 “화장실 갈 시간조차 나지 않는 근무 패턴 속에서 일하다가 방광염에 걸리자 퇴사를 결심하고 아예 다른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근무여건의 개선이 없다면 증원이 계속되더라도 인원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간호계의 중론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10년 차 현직 간호사 B씨는 “매년 우리 병원은 퇴사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수백 명의 신규 간호사를 채용한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신규 간호사뿐 아니라 중견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퇴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간호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5년 차 경력의 간호사 C씨는 “간호사들이 타 직역의 업무까지 떠넘겨지면서 퇴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간호법 제정은 거부해놓고 머릿수만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열악한 근무환경이라는 근원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증원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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