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병원들이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제안하자 간호계에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영난에 빠진 병원들이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제안하자 간호계에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병원들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체계에 돌입,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간호사들이 한계 상황에 부딪히며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동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간호계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의사 업무에 투입되며 불안을 가중시키는 점을 지적하며 반발에 나섰다. 동시에 이로 인해 간호사들의 퇴사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일 의료계와 정부에 따르면 최근 주요 병원들은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했다. 그 이유로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계 집단이탈이 경영난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꼽힌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3월 21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부분의 병원은 병동을 통합·폐쇄하면서 병상 가동률이 50%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영난에 빠진 병원들은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제안하고 있다. 연세의료원은 지난달 21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반직 안식휴가(무급휴가) 한시 확대 운영 안내’ 공지를 발송했다. 대상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내 근속 연수가 1년 이상인 간호사 등 일반직이다. 무급휴가 확대는 비상경영체계가 종료될 때까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간호계는 이들이 무급휴가를 사실상 거절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박나래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사무장은 현장 증언에 나서 “무급휴가를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무슨 의료물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병원으로 보내져 사고는 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일해야 한다”면서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무급휴가를 선택하는 상황”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관련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의사를 대체해 의료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간호사가 병동을 다른 진료과목으로 옮기기 전에는 1~2주간의 교육 기간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의료연대의 조사 결과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서울대에서는 30분~1시간의 교육 후 투입된 간호사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의료현장 내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연일 불안하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김동아 의료연대 정책부장은 “전임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보지도 못한 채 현장에 뛰어드니 간호사들이 의료사고가 나면 어쩌나 불안해한다”면서 “특히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은 응급약물이나 항암제 투여처럼 의사가 하던 고난도 의료행위를 하기 전 굉장히 곤란해 한다”고 말했다.

정유지 의료연대 강원대병원분회 사무장도 “강원대병원의 경우 간호사들의 의사나 정확한 업무 부담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고 외래·실무 간호사 및 교육 전담 간호팀을 중환자지원팀으로 구성해 중환자실 환자의 검사와 응급 업무를 하도록 했다”며 “간호사들이 교육 훈련 없이 낯선 타부서에 강제 전보 배치돼 심적 부담감과 불안감을 동반한 고충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다시 조명되는 분위기다. 대한간호협회의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서는 매년 병원을 사직하는 간호사의 80.6%는 5년 미만 경력자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사유로 ‘과다한 업무와 업무 부적응’(20.8%)이 꼽혔다. 탈(脫) 간호사 비율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상승세를 띠고 있다.

의료공백에 따른 ‘비상사태’는 대형병원도 피하지 못하고 있어 간호사들의 과로에 대한 우려가 가중된다. ‘빅5’로 분류되는 서울대병원도 이는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들어 간호간병통합병동을 내과, 산부인과, 외과, 정형외과 등 5개에서 1개로 통합했다. 내과계 중환자실(MICU)은 12개 병상 중 8개만 가동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수도권에서는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여의도성모병원 △경희대의료원 △한양대구리병원 등이, 지방에서도 △부산대병원 △충남대병원 △제주대병원 △울산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전가톨릭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동아대병원 △대전을지대병원 △건양대병원 등이 무급휴가를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간호사들의 의료현장 이탈의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로 나타난다. 간호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과도한 업무로 화장실 갈 시간조차 나지 않아 방광염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이 많은데 이번 의료대란으로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빈자리까지 메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지금도 높은 간호사들의 퇴사율이 이번 일로 더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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